일몰 명소 군산
'다사다난'(多事多難)하지 않았던 해를 찾기가 쉽지 않다지만 올해는 이 사자성어가 제대로 어울리는 한 해였다. 2월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사고부터 4월 세월호 사건을 거쳐 11월 신해철 씨의 갑작스런 별세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지방선거부터 최근의 '국정개입 논란'까지 정치는 하나같이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이런 한 해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너무 무거워 2015년에 뜨는 해를 그냥 맞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지는 해에 '올해 슬프고 힘들었던 일들과 그로 인해 겪은 마음의 고생들 모두를 가져가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서해로 향했다.
괜찮은 일몰 여행지를 찾다 군산이 떠올랐다. 군산은 대구처럼 도심 안에 많은 근대유적이 있어 일몰을 감상하기 전 구경하기 좋은 곳들이 많아 보였다. 또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다면 왠지 올 한 해 묵은 액운 따위 바다에 다 던져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2015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는 해를 바라보다
군산의 낙조를 말할 때 제일로 꼽는 곳은 '선유도'다. 선유도의 낙조는 '선유 팔경' 중 제일로 친다. 하지만 선유도에서 나오는 배가 겨울에는 오후 3시쯤에 끊기기 때문에 선유도에서 일몰을 보려면 선유도 안에서 1박을 할 계획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군산에 볼거리가 많은데 선유도에 하루를 머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시간이 아까울 수 있다. 군산시청에 선유도 말고 다른 좋은 일몰 관람 장소를 추천받았다. 답은 금방 나왔다. 비응항, 금강하굿둑, 새만금방조제 위였다.
앞으로 설명할 군산 도심의 근대유적들을 미처 다 구경하지 못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모습을 발견했다면 바로 금강하굿둑의 '금강시민공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좋다. 하굿둑 갑문과 근처에 한 줄로 나란히 앉은 철새들이 주황색 노을을 받으며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휴게소의 전망대나 인근 금강철새조망대의 전망대에서도 노을을 감상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금강 강가보다는 거리가 떨어져 있고, 유리창이 하나 끼어 있는 상태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공원에서 보는 것보다는 강렬함이 살짝 떨어진다.
날씨가 따뜻하고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해가 지기 전까지 비응항으로 달려가자. 새만금방조제 건설로 섬이었던 비응도는 뭍이 돼 비응항이 됐다. 군산시청 관계자는 "비응항은 서해에서는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 군산시의 해넘이'해돋이 행사를 비응항에서 개최하고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비응항에서 새만금방조제의 도로를 타고 신시도에 있는 새만금휴게소까지 달리다 보면 자신의 오른쪽에서 붉게 물드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새만금방조제 도로는 우리나라에서 '선셋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비응항에서 새만금휴게소까지 약 16㎞의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가면서 노을을 즐기다 해넘이 휴게소, 돌고래 쉼터 등에서 차를 세우고 일몰을 사진기에 담아도 좋다. 좀 더 예쁜 일몰 사진을 보고 싶다면 새만금휴게소 뒤편의 등산로를 따라 20여 분 오르면 다다를 수 있는 월영봉으로 가도 좋다. 철썩대는 파도소리와 함께 서해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올 한 해 힘들고 슬펐던 일들 모두 던져버리고 오자. 2015년을 맞는 마음이 한결 가벼울 것이다.
◆일제의 '수탈 최적화'를 위한 도시
해가 지기 전 군산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근대역사박물관 주변 구도심 지역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보이는 집들이 대부분 일본식 가옥의 모습이었다. 마치 옛날 일본 거리를 옮겨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보존과 개'보수가 아주 잘 돼 있었다.
근대역사박물관 주변에는 일제시대의 건물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 근대역사박물관 옆에는 군산근대미술관이, 또 그 옆에는 군산근대건축관이 자리 잡고 있다. 군산근대미술관은 일제시대에는 일본 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이었고, 군산근대건축관은 당시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있던 곳이다.
근대역사박물관과 근대건축관에 전시된 사료는 전국에 '근대'를 테마로 한 전시물들이 대부분 1950~70년대를 다루는 것과 달리 일제시대의 유물들을 가장 성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근대역사박물관에는 일제시대에 입었을 법한 옷들을 입고 사진찍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추억 또한 남길 수 있다.
일제가 남긴 건물과 일제가 조성한 구도심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니 일본 규슈 지방의 모지코 항이 떠올랐다. 모지코는 쇠락해가던 항구였지만 '모지코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옛날 일본 개항 시기의 건물들을 이용한 관광상품을 만들어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모지코 항과 군산이 다른 점이 있다면 모지코 항은 일본의 개항으로 인해 발전하던 시기의 향수를 관광상품에 이용했다면 군산은 일제가 수탈의 최적화를 위해 설계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게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군산 내항 주변에 한 줄로 늘어선 일제시대 건물, 길 건너 즐비한 일제시대 가옥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제가 수탈 최적화를 위해 어떻게 군산을 이용했는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식 가옥에서 영화주인공이 되어 보다
군산은 대구와 관광 상품 개발 측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대구 중구의 '근대 골목'이 히트한 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비슷한 아이템을 이용한 관광지 개발을 시작했는데, 그중 군산은 대구와 비슷한 시기에 근대문화유산으로 주목받았다. 군산의 경우 일제시대 가옥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경우가 많아 이를 잘 활용할 수 있었는데, 가장 원형으로 잘 보존된 곳이 바로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2층으로 된 목조건물인 신흥동 가옥은 일제강점기 때 군산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던 일본인 히로쓰 게이사부로의 집이었기 때문에 '히로쓰 가옥'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옥 내'외부를 둘러보다 보니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타짜'에서 고니(조승우)가 평경장(백윤식)과 같이 앉아있던 모습이었다. 실제로 신홍동 가옥은 영화 '타짜'에서 고니와 평경장이 살던 집으로 나왔다. 정원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정말 고니가 방 안에서 열심히 화투패를 섞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실 군산은 영화가 사랑한 도시이기도 하다. '타짜'뿐만 아니라 '남자가 사랑할 때', '장군의 아들', '소년, 천국에 가다', 애니메이션인 '소중한 날의 꿈'과 같은 영화들이 군산을 배경으로 쓰거나 촬영지로 사용했다. 구도심을 돌아보면서 영화촬영 장소를 찾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글 사진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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