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잊히는 상징들
닷새 뒤면 크리스마스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실 건지 계획하신 게 있나요? 어떤 분들은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으실 테고, 연인들은 특별한 데이트 계획을 세우고 있으실 수도 있겠네요. 아, 저기 "크리스마스에도 일해야 돼요"라며 한숨을 푹 내쉬는 분도 보이고,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혼자"라며 침울한 표정을 짓는 솔로부대원들도 보이네요.
이미 시내의 상점가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에 바쁩니다. 길거리는 어느새 화려한 불빛 장식으로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연말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수 있는 세트 상품이나 간단한 크리스마스 인테리어 용품도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매년 지켜보면서 점점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친구들에게 보내기 위해 대여섯 장씩 사던 카드는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 문자메시지나 모바일메신저의 이모티콘으로 대체됐습니다. 덩달아 크리스마스 때마다 볼 수 있던 크리스마스 실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죠. 길거리마다, 가게마다 울려 퍼지던 캐럴도 '경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면서 점점 듣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 매일신문은 한때 우리가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 중 점점 잊히는 상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 혹시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없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뜻깊은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랍니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요즘은 메신저로 통해요…①카드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체통에는 친구들이 보낸 크리스마스카드가 적어도 한 통 이상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해를 돌이켜봤을 때 기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은 기억이 없다. 지난해뿐만이 아니라 최근 몇 년간 크리스마스카드를 산 기억도, 받은 기억도 없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크리스마스가 되면 휴대 전화가 바쁘게 울리기 시작했다.
한편, 대구 시내의 문구점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크리스마스카드를 많이 진열해 놓았다. 그리고 카드 진열대를 찾는 손님도 꽤 있다. 카드를 파는 문구점에 물어보니 크리스마스카드 매출이 올해는 좀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올해는 우체통에 크리스마스카드가 수북이 꽂힌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세월 따라 변해 온 크리스마스카드
크리스마스카드는 세월에 따라 변화를 겪어왔다. 연하장이 새해 인사를 위해 격식을 차려 보낸다는 느낌이 강해 디자인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반면 크리스마스카드는 성탄절을 함께 축하하는 즐거운 하루를 보내자는 의미가 강해 화려하고 재미있는 디자인들이 많다. 카드를 열면 뭔가가 튀어나오는 입체카드는 항상 받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한때는 카드에 내장된 버튼을 누르면 캐럴이 나오는 '멜로디카드', 심지어는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는 카드도 출시된 적이 있었다.
1990년대 말 인터넷의 보급은 '카드메일'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종이카드를 사는 대신 이메일을 통해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는 것인데, 메일을 열면 성탄을 축하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 재생되거나 캐럴이 흘러나오는 방식의 카드였다. 2000년대 초까지 각 포털 사이트에서는 카드메일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카드메일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메신저의 성탄축하 이모티콘에 자리를 내 주고 말았다. 지금도 '플래시온 E카드'(www.ecards.co.kr)나 '샌드투유'(www.send2u.net)처럼 카드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는 남아 있지만 대부분의 포털사이트에서는 카드메일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요즘은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에서 제공하는 이모티콘 등이 크리스마스카드를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바일 메신저에서 제공하는 이모티콘은 거의 무료인 데다가 보내기 편하기 때문이다. 최해송(19) 양은 "카카오톡에 제공되는 애니메이션 이모티콘을 대부분 이용한다"며 "카드는 정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보낸다"고 말했다.
◆카드 사본 지가 언제더라?
이달 15일 대구 중구 동성로 교보핫트랙 지하 1층 입구. 오후가 되면서 손님들이 늘어날 때쯤, 손님들의 발길은 입구의 크리스마스카드 판매대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크리스마스카드를 고르고 있던 정윤지(16) 양은 "처음으로 자의에 의해 카드를 사러 나왔다"고 했다. 이때까지 카드를 사본 경험이라고는 연말 학교에서 각자 크리스마스카드를 사서 부모님께 써 보냈던 경험밖에 없었다. 정 양에게 크리스마스카드는 '숙제'라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김양희(62) 씨는 문구점에 있던 많은 카드 중 작은 크기의 카드 하나를 골랐다. "크리스마스 선물 안에 넣을 메시지를 적기 위한 카드"라고 했다. 김 씨도 "우편으로 카드를 보내 본 지가 참 오래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아무래도 우편으로 보내는 카드에 대한 향수가 있지만 이를 되살려보려고 카드를 사서 우편으로 보내기는 실제로 힘들더라"고 말했다.
최봄보리(62) 씨는 대학 시절 직접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서 팔았던 적도 있다고 했다. 대학 시절 미술을 전공했던 덕분에 크리스마스 때가 다가오면 직접 디자인한 카드를 만들어 팔았고, 그때 벌어들인 부수입도 꽤 짭짤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지금은 대부분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지도 않을뿐더러 사는 분위기도 아니지 않으냐"며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려 보내는 요즘 모바일 카드보다는 아무래도 손글씨가 있는 카드가 더 정감 가고 그립다"고 말했다. 김양희 씨도 "자녀들이 크리스마스에 종이 카드를 써 보내면 화장대에 두고 1년 내내 감상한다"며 "두고두고 보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게 크리스마스카드의 미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카드를 사는 이유-아날로그가 그리워
임은혜(23) 씨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는 자주 카드를 써서 보내곤 한다. 임 씨는 "작년에도 우편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았는데 '선물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며 "손으로 쓰는 카드가 성의도 있어 보이고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카드를 구입하기 위해 문구점을 둘러보는 사람들도 대부분 '성의'와 '정성'을 크리스마스카드를 구입하는 이유로 들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카드의 가벼움 대신 종이 카드가 주는 정성의 묵직함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었다.
교보핫트랙 대구점에 따르면 크리스마스카드의 매출은 올해 들어 상승세가 뚜렷하다. 특히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50% 신장된 매출을 보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개인이 사는 카드 매출은 전년도와 비슷하지만 기업체에서 단체로 주문하는 양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교보핫트랙 관계자는 "요즘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분위기와 '캘리그라피' 등 손글씨 열풍이 겹치면서 기업체가 새해 인사를 겸해 카드를 사는 비중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교보핫트랙의 경우 "종이 카드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는 판단하에 크리스마스카드 판매대를 좀 더 늘린 상태다.
최근에 부는 '아날로그 선호' 바람이 자취를 감춰가던 '종이로 된 크리스마스카드'의 제2 전성기가 될 수 있을까? 올해는 정말 우편함에 크리스마스카드가 수북이 쌓이는 광경을 볼 수 있을까? 확답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세월이 변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기술이 발전해도 크리스마스카드 봉투를 여는 그 설렘과 카드를 열었을 때 느껴지는 뭉클함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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