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민둥산은 억새밭으로 유명한 산이다. 이 민둥산 기슭에는 발구덕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데, 발구덕 마을은 커다란 구덩이가 여덟 개 있다는 뜻의 마을이다. 발구덕 마을의 구덩이는 전형적인 돌리네(doline'석회암의 용식작용으로 만들어진 구멍)로, 이곳이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임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발구덕 마을과 민둥산 근처에는 동굴이 많이 분포한다. 민둥산 정상 부근에 깊이 70m의 삿갓굴을 비롯해 입구가 기차가 다닐 만큼 크다 해서 이름 붙여진 기차굴, 증산초등학교 뒤쪽의 호랑이굴 등 민둥산 부근에서 발견된 동굴만 해도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주변의 산 또한 동굴이 있는 산, 동굴이 있을만한 가능성이 높은 산들이 많다. 정북으로 20㎞ 위쪽으로 천연기념물인 산호동굴을 가지고 있는 반론산도 그 중 하나이다.
이렇게 동굴이 많은 민둥산에서 가장 유명한 동굴이 시루봉굴이라고도 부르는 '호랑이굴'이다. 호랑이굴은 증산초교 뒤쪽 민둥산 자락 초입에 위치한 동굴이다. 필자 일행은 예전에 이 동굴을 가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동굴 입구 정보만 가지고 찾굴을 하였다. 필자 기억으로는 산 입구에 동굴 입구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찾아서 그런지 입구 찾기가 힘들었다. 첫날 몇 시간 동안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맸다. 어이없게도 산길 옆 능선 너머에서 동굴 입구를 찾았다. 예전과 주변 산길, 지형이 조금 바뀌어서 찾지 못한 점도 있지만, 사람의 기억력이 그만큼 정확하지 않아서 찾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찾자마자 바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GPS위치정보를 표시하고, 내려가는 길을 위성으로 트레킹하였다. 예전에는 주변 무덤과 지형 등을 이용해 랜드마크 위주로 애매하게 기술해서 뒷사람에게 남겨 주었을만한 입구 정보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입구 좌표를 표시하고, 반대로 미리 입력해 놓은 좌표로 따라가면 된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이제는 애매한 용어들, 즉 '8부 능선쯤, 산허리를 끼고 5분간 산행하면, 무덤에서 2시 방향' 등등의 수식어를 대동하지 않고도 그전에 미리 확인해 둔 GPS 좌표를 따라가면 동굴 입구에 정확하고 쉽게 다다를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그렇게 좌표를 저장한 후 입구에서 장비를 착용하였다. 훈련과 측량을 목적으로 가는 동굴인 만큼, 장비를 철저히 확인하고 동굴 입구 부근 큰 나무에 로프를 설치하였다. 한 명씩 차례로 '입굴'을 외치면서 하강을 하였다. 20m 정도를 하강한 후 다시 정면의 좁은 구간으로 10m 정도 하강하면 본격적인 동굴이 시작된다. 호랑이굴의 특징은 지굴(갈림길)이 많지 않아 길을 찾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화려한 생성물은 많지 않지만 석순, 석주, 동굴 빨대, 베이컨 시트 등의 생성물이 곳곳에 있다.
저번에 왔을 때 보았던 설치류의 뼈 부스러기가 아직도 있는지 궁금했다. 청설모 정도 크기의 설치류로 추정되는 척추동물의 뼈였는데, 동굴 입구에서 운이 나쁘게 추락해서 그 안을 헤매다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날도 역시나, 한쪽 구석에 얌전히 박물관의 화석처럼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었다. 탐사대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뼈가 원래 가지런히 놓여 있지 않았는데 먼저 다녀간 동굴인들이 조각을 맞춰놓은 것이었다. 왠지 자연사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박물관 화석 표본처럼 가지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다. 앞으로 누군가 치우지 않는 한 깊은 어둠 속에서 아주 천천히 화석화될 것이다.
호랑이굴 탐사는 그리 길지 않다. 탐사하기에 난도가 그렇게 높거나 길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길이 자체도 비교적 짧은 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큰 바위를 넘거나 뛰어내릴 일이 많아 자칫하면 발목을 다칠 위험이 다분한 동굴이었다. 이런 동굴은 큰 기술적 어려움이 없고, 계획과 준비도 비교적 쉬운 편이다. 하지만 길이가 길고, 크고, 난이도가 어려운 동굴이 산 정상 부근에 있는 경우 미리 입구를 확실히 알아 놓은 상태에서 2번, 3번까지도 들어가 탐사를 해야 하는 일도 있다.
호랑이굴을 나오면서 입구 부근에서 다른 대원들의 등강을 기다리면서 한쪽 벽을 보니 관박쥐 몇 마리가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날개를 덮은 모양이 관에 들어간 것처럼 보여 이름 붙여진 박쥐이다. 입굴 할 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가 동굴을 들어온 사이 마실을 다녀온 모양이다. 랜턴 빛을 약하게 비춰 조심히 관찰했다. 가냘픈 다리를 벽에 걸고 거꾸로 매달려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날개는 또 어찌나 얇은지, 그 위로 핏줄도 선명히 보일 정도였다. 여기서는 필자가 방문자이고 박쥐를 비롯한 동굴생물들이 주인이니 방해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조심스레 사진만 몇 장 찍고 대기하다가, 나머지 대원들과 동굴에서 측량한 측량 기록지를 챙겨 함께 탈굴 하였다.
지금은 종이에 숫자와 각도, 거리만이 암호처럼 적혀 있지만 차근히 해석하면 근사한 동굴측량도가 될 것이다. 대구로 내려오는 길에 영월 고씨동굴 앞의 동굴생태관을 관람했다. 동굴에 관해 상세한 설명과 함께 재미있을 만한 요소들을 잘 전시해 놓았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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