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기행-아시아를 가다] 카렌족 마을 순례(5)

입력 2014-12-18 07:24:49

방학 맞은 아이들 골목마다 웃음소리…'강남 스타일' 말춤 추는 소녀도

고산족들은 이 오지의 가파른 산세에 맞춰 잘 자라는 카오(산벼)와 카우폿(옥수수), 깔람삐(양배추) 등을 주 작물로 재배한다. 인간은 자연에 적응해 살아가는 데 가히 천재적이지 않은가. 그 산속에서 먼먼 옛날 우리처럼 8남매 10남매 낳고 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서산으로 해만 넘어가면 암흑 세상으로 변하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별로 할 일이 없어 보인다.

하루 종일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땅에 엎드려 있다. 가까이 가 보면 그들의 옷에는 소금꽃이 피어 있다. 종일 막걸리 한 사발도 없이 물과 밥 한 덩어리, 반찬 한 가지를 손으로 깨작깨작 수저도 없이 먹는다. 그렇지만 그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매쭝삼 깔리양 마을을 가다

마을로 가는 길은 상당히 험하다.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진창이 나오면 한 사람은 내려 걷는다. 약간만 지형이 낮은 곳에는 영락없이 빗물이 고여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한참을 가는데,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윤, 윤!" 하며 부른다. 급브레이크를 잡고 뒤돌아보니 동물원에서나 본 듯한 엄청나게 큰 뱀이 갈지자를 그리며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간다. 방금 바로 옆에서 풀숲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그 뱀이 지나갔나 보다. 머리가 쭈삣 선다. '쫑안'이라고 하는데 돌아와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큰 뱀이다. 검은빛에 아이들 허벅지 정도의 두께에, 4, 5m는 족히 될 듯하다. 옆에 있던 사람이 풀 위를 날아가듯이 하더라고 한다. 너무 놀랐으니 갖가지 억측이 나올 듯하다.

매쭝삼 마을은 근처의 다른 마을들과는 다르게 코끼리를 키운다. 그래서 아주 가끔 코끼리를 보기 위해 소수의 관광객들이 오기도 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돼지, 닭, 오리, 소, 염소와 버펄로들은 모두 자유롭다. 돼지들은 종일 천지를 쏘다니며 어디든 입으로 들쑤시며 먹이를 찾는다. 그 모습이 꼭 불도저 같다. 어느 마을이나 개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밤길을 가다 금방 물 것처럼 떼거리로 모여들면 그야말로 섬찍하다. 대부분 불교 국가는 개를 먹지 않으니 사방에서 개 짖는 소리 요란하다. 한국은 그야말로 개장수들이 두 눈 시뻘겋게 뜨고 다니며 개를 잡아간다고 하는데, 언젠가 매스컴에서 보니 한 마리에 20여만원이 넘어가 골목에서도 보기 힘들다고 하던데….

◆'강남 스타일' 말춤을 추는 아이

경사진 마을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오던 아저씨가 넘어진다. 작년 장마에 깊게 팬 홈에 오토바이 바퀴라도 빠졌을까. 옆에 있던 사람이 서둘러 세워 주는데 이미 백미러가 깨졌다. 손을 잡고 일어난 아저씨는 부끄러운지 서둘러 사라진다.

마을 입구에는 아이들이 모여 놀다가 낯선 이국인에게 신기한 눈길을 보낸다. 경계하는 아이들에게 "마짱 까올리"(나는 한국인입니다) 하며 껌 하나씩 건네자 얼굴에 금방 웃음기가 감돈다. 옆에 있던 소녀 하나가 스스럼없이 '강남 스타일' 춤을 선보인다. 펄쩍펄쩍 뛰며 말춤을 추는데, 아이들 얼굴에서도 웃음보가 터진다. 꼬맹이 하나도 같이 뛰면서 흉내 낸다. 대바구니를 멘 아주머니가 한 손에는 커다란 파파야를, 또 한 손에는 기다란 칼을 들고 지나간다. 마을 입구 회관 앞에서는 남정네들이 한가하게 앉아 소박한 웃음을 날린다.

아이들이 넘쳐나는 젊은 시골, 방학을 맞아 인근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형과 누나들도 들어와 더욱 붐빈다. 산속 오지에서 아이들은 특별히 할 거리가 없으니 저녁 무렵 어느 집 앞에 두어 명 앉아 있다 싶으면 금방 한 무리가 되고, 모처럼 보는 이방인에게 어린이다운 호기심을 보인다. 이것저것 먼 나라에 대한 궁금증도 참 많은 모양이다. 특히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고 금방 세계와 접속할 수 있으니 더욱 그러하리라. 그들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도 역시 너희들처럼 궁금한 것이 참 많단다" 하고 속말을 해본다.

◆후아이 펑 따이(남쪽) 마을

키를 넘은 갈대들이 양쪽으로 자라 주위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약간 섬찍한 생각까지 드는 그 길 위로 가끔씩 자기 키보다 더 큰 낡은 공기총을 메고 오토바이를 탄 사내들이 지나간다. 길가에는 뱀들이 차바퀴에 깔린 흔적들이 배어 있고, 한 모롱이를 돌자 6, 7세쯤으로 보이는 아이들 세 명이 산 속에서 저희들끼리 뭔가를 잡는 모양이다. 저 멀리 산비탈에는 사람들이 깔람삐를 심기 위해 밭을 매고 있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 나의 어린 시절, 산속에 살던 나도 학교가 끝나면 동무들과 함께 책보를 허리 뒤로 묶고 검정 고무신 쩔거덕거리며 논둑길을 달렸었다. 아카시아꽃이 지천으로 눈부시게 날리던 신작로, 농수로를 따라 떨어지던 물줄기, 그 아래로 기어가는 뱀 한 마리를 기어코 친구들과 돌로 맞히던 코흘리개 시절, 그때 한국의 모습이 지금 여기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것처럼 먼 흑백 사진 속에서 잠자던 한국의 코흘리개들이 수시로 튀어나와 구슬 치기를 하고 팽이를 돌리고, 콩주머니도 던지며, 동전 치기를 하는 모습들은 어쩜 저리 닮았을까.

마을 초입에는 양편으로 크리스마스 꽃들이 무더기로 흔들리며 마치 아이들이 조막손이라도 흔드는 것 같은 아름다운 동구(洞口), 띄엄띄엄 집들이 보이고 아이들은 반쯤 기운 나무 위에 올라가 마치 시소처럼 구르며 깔깔거린다. 그 반복적인 동작에 싫증이 날만도 한데,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친구만 옆에 있다면 아이들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모양이다. 평소에는 문을 잠가 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여는 구멍가게, 그곳에서 아이들과 과자를 사와 보물찾기 놀이를 하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허둥거리며 서로 먼저 보물을 찾겠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렇게 산간 마을의 하루는 저물어 간다.

아담한 교회가 나오는데 한쪽에는 이 나라의 국민 스포츠인 다꼬(발배구) 네트가 쳐져 있고, 동네 청년들은 운동을 하다 동전치기를 하다 한다. 이 교회의 아잔(목사)은 이방인에게 굉장히 호의적이며 따습다. 나도 그의 집 장작불 옆에서 깜박 낮잠이 든 적이 있다. 그는 목회 때마다 기타를 목에 거는 '노래하는 아잔'이다. 두어 번 미사에 참석했는데 그때마다 꼭 노래를 시켜 '향수' '산 너머 남촌에는' '북한강에서' 등을 부른 적이 있다. 날씨가 더워 항상 열어놓은 문 밖에는 마당에 깔아놓은 짚더미로 장난질하는 꼬맹이들 소리 요란하다. 교회 앞에는 시멘트를 아끼기 위해 차 바퀴만 닿을 수 있게 만든 두 갈래 길이 있다.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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