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프리즘] 저금리의 역습

입력 2014-12-16 07:02:52

올해 하반기에 들어 시중 정기예금 금리가 2.0%대의 초저금리로 진입하였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5%대의 금리를 유지하다가 매년 금리가 내려와 현재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금리는 0%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15% 전후, 1980년대에서 1997년까지는 10% 전후의 예금금리를 유지하다가, 1998년 IMF 외환위기 사태로 말미암아 약 2년간 20%에 가까운 초고금리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이후 경제구조조정을 단행하여 금리가 안정되었지만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까지 5%에서 8%대의 금리는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금리 현상의 긍정적인 영향으로는 전세를 통한 주거생활의 안정을 들 수 있었다. 집주인으로서는 전세금을 받아 이자로서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해결하거나 전세금으로 집을 사들이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으며, 세입자로서는 목돈을 마련하여 전세금을 지급하면 매월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 덕분에 세입자와 집주인이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1% 후반대의 저금리 정책을 쓰는 바람에 세입자들이 월세의 벼랑으로 떠밀려버렸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받으면 은행에 넣어 은행금리를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는데 1%대의 금리에 전세금을 받아서 수익을 올리기란 어렵다.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월세 또는 반전세로 임대하려는 건 당연한 시장경제원리이다.

과거에는 연 5% 이상 고금리에다 부동산이 활황이어서 세입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월세를 받기보다 전세를 놓아 예금하여 이자수익을 취하거나 매매로 인한 시세차익을 얻는 것이 이득이었다. 지금은 정기예금으로는 연 1%대의 세후 순수익을 얻을 수밖에 없다. 겨우 적자를 면하고, 물가를 고려하면 이자의 실질 수익률은 제로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어느 집주인이 전세금을 예금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가 수익도 나지 않는데 나갈 때 그 금액 그대로 돌려주려고 하겠는가.

또한, 저금리정책은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 운용에 적신호가 켜지게 하였다. 각종 연금제도는 적립된 연기금을 국채 등에 투자하여 그 운용수익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기본개념이다. 우리나라 공무원연금이 1970년대에 설계될 당시 금리가 15%대, 평균수명이 60세 정도였다. 그런데 그 금리가 현재 2%대로 추락하고, 평균수명이 80세로 연장되고 말았으니 연기금의 운용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짐작할 수 있다. 고령화, 저출산의 영향으로 연금수급자는 늘어나고, 기여금 납부자는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점에다가 저금리의 삼각파도를 만나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이 시급한 개혁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또한, 저금리로 말미암아 저축이자로 생활비를 충당하던 노년층이 빈곤해졌다. 노년층의 이자, 연금소득이 줄어들거나 지급시기가 지연되면 노년층이 의료, 복지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여 국가의 부담으로 귀착될 소지가 있다.

또한, 저금리 정책은 현금자산 선호의 부작용이 있다. 은행에 정기예금을 하여도 수익이 나지 않지만, 예금출처 조사 등의 두려움 때문에 예금을 꺼리고 5만원권 중심의 현금수요를 폭발시키고 있다. 화폐는 경제의 핏줄로서 경제주체 간에 돌고 돌아야 기능을 발휘하는데, 화폐가 금고에 잠자는 한 경제의 유동성과 불확실성만 증대시킬 뿐 아무런 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또한, 저금리정책은 필연적으로 부채의 증가를 가져온다. 금리를 내리는 것은 기업의 자금조달을 쉽게 하여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이 크다. 예금금리가 제로금리라고 하지만, 대출금리는 5%대를 유지하고 있어 기업이나 가계 부채의 상환이 만만치 않다. 초저금리는 한계기업의 대출액 증가로 경기침체 시 대량부도로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가계의 면에서도 저금리의 유혹이 있어 세입자가 오른 전세자금을 부담하기보다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사들이고자 하는 심리가 있어 가계부채를 증가시킬 우려가 있다. 부채에 따른 이자를 갚다 보니, 기업은 투자여력이 없고, 가계는 소비여력이 줄어들었다. 줄어든 투자'소비여력은 내수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저금리 정책을 재고하거나 아니면 더 이상의 금리 인하는 바람직하지 않다.

황현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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