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사설정보지)인지 청와대 보고서인지 성격조차 모호한 문건 하나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문고리 권력'이라는 대통령의 수족(手足)들과 대통령의 남동생 그리고 대원군이라고 불린 비서실장까지. 구중궁궐(九重宮闕) 속에서 벌이는 물고 물리는 이야기가 초대박 흥행상품이 됐다. 사실 여부를 떠나 민심은 험해지고 시선은 싸늘해져만 간다. 정치권이라고 민심과 다를 순 없다. 그래선지 참다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전에 없이 강한 어조로 사실이 아니라고 방어에 나섰다. 새누리당 지도부 앞에서 문고리들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재확인시켰다. "15년간 나와 같이 고생한 사람들로 언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느냐"고 했다.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문고리들이야 재신임을 받아 가슴을 쓸어내리겠지만 말이다.
문고리와 문고리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고리는 말 그대로 문을 여닫는 데 쓰는 장치일 뿐이다. 그 문고리를 쥐고 있다는 문고리 권력에 대해 국어사전은 '권세가에게 빌붙어 권세가 이상의 행동으로 실리를 취하는 실세 중의 실세를 빗대어 하는 말'이라고 적고 있다.
문고리 권력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 세 사람을 이른다. 이들은 15년 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문고리를 잡기 시작했다. 빵빵한 학벌과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다른 의원실 비서진들에 비하면 더 뛰어날 것도 없었지만 그들은 열정이 넘쳤고 '주군'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았다. 그게 1998년 박근혜 의원실의 풍속도였다.
세상사 변하는 법이다. 말 그대로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는 업무가 시작이었다. 방 안의 '모시는 분'이 힘이 점점 세지고 대권후보의 반열에 오르고 결국 대통령이 되자 이들 문고리의 위상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모시는 분의 힘이 세지면 문고리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는 건 인지상정이다. '장군 부인도 장군이고 임원 부인도 임원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찾아오는 사람은 넘쳐 나고, 만나려는 사람은 줄을 서는 상황이라면 문 앞에서 줄을 세우고, 순서를 정해주는 문고리의 힘은 폭발적으로 세진다. 국회의원도 장'차관도 시장'지사도 이들이 뒤로 순서를 정하면 물을 먹게 된다. 모시는 분의 심기를 읽고 문 밖으로 전달하며 코치까지 해주면 금상첨화다. 무슨 일에 관해 누가 왔었고 누구를 만나기로 예약돼 있다는 관련 정보까지 흘려준다면 문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들을 구세주처럼 떠받들게 된다. 그게 문고리 세계의 생리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 중의 진리다. 직급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고리 말단이라도 보직이 중요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찌감치 2인자가 없다는 선언을 했다. 새누리당과 정부에도 실세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지만 설이 엇갈린다. 명실상부한 2인자나 실세가 없다는 말과 같다. 국무총리도 비서실장도 바지저고리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문고리 3인방이 실세 중의 실세라는 말은 정치권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대통령이 직접 2인자는 없다고 했지, 문고리들에 대한 신뢰는 높고 강하지, 무게중심이 문고리들에 기울어지는 것은 보나마나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말처럼 문고리 3인방은 초심을 잃지 않고 15년을 한결같은 자세로 지켰을까?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측근들이 10'26 이후 하나같이 등을 돌리는 세태에 치를 떨어야 했던 박 대통령으로서는 그들만큼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없었을 것이다. 그게 화근일 수도 있다. 방주인의 신뢰가 깊으면 깊을수록 문고리의 권세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또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 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는 말이 있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의 고사가 출처이다. 바람이 문제라는 말이다. 바람이 부는데 나무가 흔들리지 않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떻게든 권력자의 눈에 들어야 하고, 한 번이라도 만나야 하고, 잠시라도 더 눈도장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려는 문고리들을 구워삶기 위해 목숨을 건 대시를 했을 것이라는 짐작도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다. 이 공세를 이겨내는 것은 고수(高手)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들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앞으로 쏟아져 나올 이야기들이다.
이동관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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