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문화 상품과 자동차 수출을 비교하던 시절, 한국에서 문화 담론은 새로운 태도를 가진다. 호박 속에 갇힌 모기에서 DNA를 추출해 공룡을 복원한다는 황당한 생각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손을 거쳐 영화로 만들어졌고 엄청난 돈벌이를 했다. T렉스가 성조기를 흔드는 풍자가 자본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했지만 한국은 문화가 돈이 된다거나 미래는 문화가 지배한다는 식의 논의로 이어진다.
대개 문화가 도시와 만나는 모습은 몇 가지의 과정을 거치는데 먼저 문화는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예술적이고 역사적이며 지적인 영역만 문화로 인식하는 폭력적 모습을 띠지만 이 부분을 제대로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예컨대 내가 경험한 한국의 음주 문화나 교통 문화는 좋은 모습이 아니지만 도시를 문화로 치장할 때 논의되지 않는다. 문화는 콘서트장과 전시장 등에서 이뤄지는 고상한 모습으로 생산되고 소비된다. 이 시기 소비 주체는 자신을 중산층 또는 그 이상의 계급이라 여긴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문화와 만난 도시에는 본격적인 소비 주체가 뒤이어 등장한다. 이들은 실제로 도시의 중간계급을 형성하고 이전과 다른 문화 소비 형태를 보인다. 해외여행을 통해 다른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영화와 미디어를 통해 간접 경험한 문화를 소비한다. 도심에는 이탈리아 파스타부터 베트남 쌀국수까지 모든 나라의 음식점이 등장한다. 식당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은 당장 도쿄나 파리의 패션 거리로 공간이동을 해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명품으로 치장하고 있다. 이 시기 소비 주체는 자신을 중간계급에 묶으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차별화되고 분명한 문화자본을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도시는 스펙트럼을 확장한다. 도심 중심의 문화 소비는 조금씩 지역을 옮겨 가게 되고 차별화된 모습을 선호한다. 문화 소비를 주도하던 중간계급도 분열한다. 좀 더 세련된 문화자본을 확보하고 있다고 믿는 집단이 만들어지고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같은 집단끼리 모이다 보니 전통적인 상권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 각광받게 된다. 이질적인 공간을 치장하기 위해 이야기가 필요했고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은 역사와 설화까지 섞어낸다. 스토리텔링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변화된 도시의 모습에 자극을 받는 쪽은 자본과 지자체다. 자본은 원래 속성이 그러니 당연한 모습이지만 지자체의 태도는 신중해야 한다. 많은 지자체는 경쟁하듯 문화마케팅과 역사마케팅을 내세운다. 하지만 성공적인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축제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남발하던 지역 축제의 몰락이 그렇고 대두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 성공을 담보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외지인이 도시를 찾아 와 도시이미지를 높인다는 무형의 성과를 논하지만 이를 계량하는 것도 허수가 많다.
2014년은 지역에서도 다양한 문화 실험이 있었다. 분명 내세울 만한 성과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공간을 구성하고 이슈가 되는 과정에서 마을은 뜨고 주민은 떠나게 된다. 상권이 형성되고 상업자본이 몰리면 부동산 가격은 당연히 상승한다. 이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다음을 예측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예상컨대 이다음의 모습은 도시가 일정 부분 활성화되고 적당히 돈도 돌 것이고 문화를 소비하는 이들의 도시에 대한 소속감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동네와 골목을 떠나야 하고 지역생태계는 붕괴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사례를 먼저 경험한 도시들이 제법 많다는 점이다. 2015년 우리 도시는 어디에 방점을 두고 다음을 예측해야 할 것인지 어쩌면 쉽게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공간을 우선할지 아니면 사람을 우선할지.
권오성/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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