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지난 2일 공식적으로 '만남의 미술관-이우환 그 친구들'의 건립 포기를 밝혔다. 이우환 화백과 건립 양해 각서를 체결한 지 4년여 만이다. 이에 앞서 대구시는 지난달 26일 공석 16일 만에 신임 대구시민회관장을 선임했다. 이 둘은 최근 대구문화예술계의 핫이슈였다. 이 두 사건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적 행정'이 어떻게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술관 건립은 첫 출발부터 컴컴했다. 민자유치로 대구시립미술관을 짓고 있는데 다시 300억 원이라는 돈을 들여 새 미술관을 짓겠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요즘 한창 유행인 '찌라시 통신'이 난무했고, 여론도 좋지 않았다. 추진과정도 밝지 않아 기본 계획만 있을 뿐 참여 작가 등 정작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장막 뒤에 있었다. 전임 대구시장이 추진했고, 추진 주체들이 아는 것을 입 다문 가운데 이에 대한 방침을 물을 때마다 돌아온 답변은 늘 강력 추진이었다.
이 사업이 삐걱한 것은 4월, 이 화백이 서울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지방에 미술관을 건립하기 싫었지만, 대구시장이 하도 부탁해 하라고 했다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이어 권영진 신임 대구시장은 취임 3일 만에 원점 재검토를 언급했다. 곧 번복했지만,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이어 8월 10일 권 시장은 직접 일본으로 가 이 화백을 만났고, 9월 초 만남에 이어 11일 이 화백이 대구에서 설명회를 했다. 결정적으로 뒤틀린 것은 이 언저리였다. 이 화백은 엄청나게 화가 난 채로 일본으로 돌아갔고, 이후 대구시는 '책임지지 않는 포기'를 위해 모양새 갖추기에 나섰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 화백은 9월 28일 자로 공개를 전제로 편지를 보내 대구시가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난과 함께 건립 포기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대구시는 편지를 공개하지 않았고, 열심히 추진하는 것처럼 미술관 건립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또, 권 시장은 10월 14일, 설명회 때 논란이 된 작품 구입비 규모를 정확하게 알려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시는 이 화백의 편지가 권 시장이 편지를 보낸 뒤인 10월 15일에야 도착해 이 화백의 포기 의사를 몰랐다고 했다.
이런 내용을 시의회에서도 답변했지만, 거짓이었다. 대구시는 9월 설명회 이후 시 고위 간부와 관련 인사를 통해 이 화백과 대면, 통화 등으로 포기 의사를 전달받았다. 11월 28일 시의회가 내년도 미술관 건립 사업비를 전액 삭감해 논란이 일자, 12월 2일 오전 권 시장이 시의회 확대의장단 회의에서 이 화백의 편지를 공개했고, 오후에는 공식적으로 건립 포기를 선언했다.
시의 건립 포기 이유는 이우환 작가의 미술관 건립 참여 중단 의사, 예산 규모의 불투명성, 콘셉트와 비전 불투명이었다. 시는 계속 하고 싶은데 이 화백이 참여 중단 의사를 밝힌 것이 주된 이유인 것처럼 발뺌한 것이다. 결국, 설계비 등 20억 원 낭비에다 이 화백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됐고, 시의회와도 껄끄럽게 됐지만, 누구도 책임질 사람은 없게 했다.
대구시의 책임 회피용 희생양 만들기는 대구시민회관 관장 선임에서도 드러났다. 공모와 심사위원회의 심사로 1, 2순위자를 뽑아 놓고도 임명하지 못했다. 대구시민회관 소속인 대구시립합창단 공연 레퍼토리의 종교 편향성에 대한 타 종교단체의 반발 때문이었다. 이 일로 합창단 상임지휘자까지 사임했지만, 대구시의 행정력은 실종됐다. 오히려 꼼수로 1순위 후보자인 전임 관장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개관 초 1년 동안 대구시향 상임지휘자 선임과 다양한 공연, 단일 공연장으로는 드물게 5억 원의 국비 지원까지 성사시킨 전임 관장을 무능력자로 몰아붙였다. 이어 권 시장은 직접 1, 2순위자를 면접해 2순위자를 선임했다. 직접 면접을 해보니 '전문가 심사위원들'의 평가 결과와는 달리 2순위자가 더 낫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 두 건 모두, 행정을 정치적으로 계산한 대구시장이 선택할 여지는 없었다. 잘못한 행정은 바로잡고 책임지면 되지만,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하면 최종 결정권자인 시장의 의지가 처음과 끝이다. 그리고 권 시장의 선택은 희생양 만들기였다. 두 사건은 모두 끝났다. 행정의 잘못은 없으니 당연히 책임질 사람도 없다. 행정에 정치성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만 재확인했다. 절대로 지키지 못할 원칙 재확인에 들인 값비싼 대가를 생각하면, 무기력한 행정력에 대구시민 모두가 희생양이 된 씁쓸함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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