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권력자와 '천지불인'

입력 2014-12-08 08:42:08

기장군청 현관에는 대조적인 현판이 걸려 있다. 하나는 세종의 치민 방책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자!'는 구호다. 세종은 버려진 아이와 무시당하는 노인, 힘없는 노비를 먼저 고려했다 한다. 전제군주가 심사숙고한 대상이 기아(棄兒)와 노인과 노비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12월로 접어들기 무섭게 칼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친다. 윤구월 덕택에 길고 안온한 가을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무상하기 짝이 없다. 노자는 이것을 일컬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천지가 사심 없이 평등하게 만물을 생겨나게 하고, 만물은 생명의 주재(主宰)를 천지에 맡긴 채 결국은 천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에서 생겨남과 사멸함은 동일 선상에서 이루어진다. 유와 무의 교체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로 보는 게다. 그러하되 인간은 자연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그것이 인도와 천도의 차이를 낳는다. 천지의 이치를 그대로 따른다면 세종의 심사원려는 사족(蛇足)이 된다.

거기에 개입한 것이 인의 내지 연민 혹은 복지다. 정책 결정에서 사회 최하층 민초를 염두에 둔 권력자의 따사로운 내면풍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구중궁궐 심처에서 평생 대면조차 하지 않았을 이들을 위한 정책마련에 부심했던 인간 세종. 그들의 한겨울 추위와 한여름 무더위와 이른 봄의 허기를 떠올렸을까?

가진 자들 편에서 그악스럽게 권력을 행사하는 21세기 대명천지의 불인(不仁)한 권력자와 권부(權府) 세력을 본다면 세종이 뭐라 운을 뗄까. 담뱃값 올려서 빈자 주머니 털어 부자 주머니 채워주는 불의(不義)한 권력행사를 보고 무슨 소회에 젖을 것인지, 알고 싶다. 법인세와 소득세는 놔두고 간접세인 담뱃세 올려서 부족한 세수 거두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산술을 인자한 세종이 어찌 받아들일지 궁금한 것이다.

권력의 정당성을 성립하는 요체(要諦) 가운데 하나는 공평한 분배다. 부자라 해서 입과 밥통이 열 개 있는 것 아니고, 가난뱅이라고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게 없는 것도 아니다.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라는 말에 사태의 핵심이 녹아 있다. 모든 사람들 입에 쌀이 들어가고 백성이 주인인 나라, 그것이 민주공화국이다!

우리가 권력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소략하다. 사람대접 해달라는 것이다.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의 모욕으로 분신자살하고, 선주의 탐욕으로 베링해협 차디찬 깊은 바다 속으로 수십 명 어부가 죽어나가는 불의한 나라. '세월호 대참사'로 304명이 죽거나 실종돼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잔인무도한 국가와 권력자.

노자는 인의(仁義)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리사욕을 채웠던 춘추시대 권력자들에게 '천지불인'으로 자연의 이법을 설한다. 자연법칙을 본받아 생각하고 실행하면서 평범하고 실제적인 내용을 구하라고 타이른다. 민초들이 온전한 인간으로 태어나 온전히 살다가 마침내 자연의 부름을 받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거기 더하여 세종처럼 명민한 군주가 권력의 정점에 있다면 우리는 잠시나마 행복해지리라.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그것을 오래도록 유지하며 앞길을 인도한다. 그래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자!'라는 구호가 낯설지 않음은. 우리로 하여금 유쾌하게 노동하도록 유인하는 정의롭고 자애로운 최고 권력자와 권부가 그립다.

늦어진 일출과 서둘러 찾아오는 일몰의 시간대에 거리와 광장과 지하철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사람들이 색 바랜 먼지처럼 몰려다닌다. 보육원과 양로원과 급식소의 냉기가 어떨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흥청대는 연말연시와 담쌓고 살아가는 이웃들의 고단한 삶의 양상과 흉중의 주름이 어떨지, 그저 무연(無緣)해진다.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엄혹한 시절에 구제방도를 찾아 밤낮으로 숙고했던 임금의 수심에 찬 얼굴이 떠온다. 야심한 시각에 그이가 도달하려던 방책과 출구 모색의 면모가 약여하게 다가오는 12월. 자연법칙인 '천지불인'을 세간(世間)에서 보편법칙으로 실행하려던 권력자의 따사로움이 조속히 여러분을 찾기 바란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노어노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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