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중국 동포 한국 생활기] 유종의 미

입력 2014-12-04 08:00:00

나는 콧수염이 나기 시작한 사회 입문에서 만난 첫 친구와의 인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 류일복이라고 해. 나 최군수라고 해. 그리곤 둘이 손을 맞잡았다. 낯섦을 허무는 예절의 수작이었다. 가슴 설레던 감흥의 깊은 추억은 내가 교복을 벗은 사회청년이 되었다는 성숙을 뜻했다.

그로부터 그 친구와 지금까지 20년 이상의 지우가 되었다. 많은 친구와 헤어지고 잊혀가고 유일한 오랜 친구로는 그가 하나 남았지만 그가 내게 진정한 친구 하나로 남았다는 것은 인생길에서 참말 감사한 동행이다. 새로운 것이 묵은 것이 되었지만 묵은 것도 때론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다.

첫 연서를 쓰고 첫 사랑이 되어 첫 연인으로 발전하기까지 새로운 것은 그토록 신선하고 전율시키는 것이었다. 첫 직장을 만나고 첫 상사의 지시에 따라 첫 동료와 첫 작업을 시작하면서 서먹서먹하고 쑥스러워도 어떤 꿈이 있기에 대인관계의 첫 입직이 결코 힘들지 않았다.

어릴 때는 어쩌다 생긴 진솔옷(한 번도 빨지 않은 새 옷-편집자)을 입으면 문 밖에 나가 또래 아이들 보기 무엇했다. 모두 기운 옷이거나 헌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전벽해의 시대가 와버려 오히려 자릿내가 나거나 새물내(빨래하여 이제 막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편집자)가 나는 옷이 아닌 멋진 옷을 입고 나서지 않으면 자신이 이 거리에서 소외당하지 않는가 하는 차등감이 든다.

새 옷 하나에 연연하던 그런 소박한 시대를 신세대는 웃는다. 바지가 헐지 않고 다만 유행에 뒤처진 옷이라는 이유로 뒤란에 방치되는 구세대다. 그것이 현시대의 청춘을 살아내지 못한 부러움과 질시의 절박함으로 상실감은 오래된 것처럼 쌓여간다.

그처럼 모든 것은 가고 한순간을 잘 살아낼 일이다. 일출의 해동갑은 일몰로 잘 마무리 짓고 신록의 봄이 낙엽의 가을로 맞듯이 자연 만상의 룰은 절대적이다. 인생은 신입생의 입성으로부터 졸업생의 정도로 가고 생로병사를 거쳐 장지로 가는 본디의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 여느 늙은이들처럼 한가히 거리에 나와 산책하다가 발랄한 율동의 거리를 더듬으며 옛 추억에 젖어볼 때면 내 지나온 삶에 외쪽 생각이 아닌 아쉬움이 질벅할 것 같다.

늙은이는 시골에 남고 젊은이는 도시로 가고 신생아는 가물에 단비처럼 태어나는, 현실을 기피할 수 없는 이 신로교체의 자연리듬도 유행적인 생과 사의 회두리(여럿이 있는 중에서 맨 끝이나 맨 나중에 돌아오는 차례-편집자)일까? 푸른 녹음의 잉태로 아이같이 촉촉하게 느껴지던 산도 겨울이 되니 힘없는 노인네같이 삭막하고 적막한 바람이 지나간다.

첫 것 뒤에 불가분리의 순서로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를 거쳐 오르면서 서서히 뒤로 밀리고 옷깃차례로 낡은 것과 지나가는 것은 참참이 사라지는 것이 된다. 새로움을 즐기는 본능에 의해 낡음은 교체되고 앞서 가는 것으로 정해진 존속공법이다. 사라지는 것에 연연해 역사의 한 폐지로 박물관에 박제되어 소장되거나 민속촌과 옛 풍속 고전놀이까지 재현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향수로 전시된다. 낡은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추억될 뿐, 끊임없는 담금질로 새로운 것은 탄생되고 사람은 그 편리하고 복된 것에 길들여지면서 이따금 과거를 잊어간다. 어쩜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본가를 떠나 시집간 처녀의 풀보기처럼 아쉬우면서도 어렵다.

"한때는 잘 나갔지요." 온갖 시계 만물상은 다 들어찬 듯 성냥갑만한 점포인데도 묘한 고릿적 풍경의 시간으로 반추시킨다. 장신구에 지나지 않는 손목시계 소리로 들렸던 내게 머리가 많이 벗겨진 알이마 기사님이 아쉽듯 이야기하는 말씀이 왜 그리도 가슴에 인각 되는 것일까! 시계 기사아저씨가 그대로 시간의 풍경이다. 시계는 한물갔어도 시간은 해를 거르지 않고 똑같이 인생 여로를 지켜주는 똑딱거리는 연속이다. 시간은 삶의 길을 아우르고 재촉하는 한계가 아니라 항상 흔들리는 시계추로 멈추지 않기 위한 산자의 끊임없는 소리맵시를 측정하는 생명박동이었다.

이 세상은 참 살기 편하다면 때론 지난날과 헌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그리울 때가 있다. 나의 첫 만남의 20년 지기 친구처럼 사사로이 버리지 못하도록 갈고 또 닦고 하면 그 얼마나 소중한 빛남인가. 어떤 교역을 목적으로 한 신뢰 없는 만남엔 진정한 벗의 의리가 들어 있지 않다. 새로운 사람에 대해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계기와 확인으로 믿음이 새거나 깨지면 바로 절교하게 되는 것이 새로운 사람과의 구설이다. 차라리 묵은 것에 아집을 갖고 집착하고 더 버리지 못한다.

오래 묵을수록 술의 향기가 깊듯 우정이나 애정의 연은 더욱 깊이 간주하고 사랑하고 아낄 일이다. 피를 나눈 의형제처럼 억겁이 가도록 내 생애 지팡이가 되어주는 친구 하나쯤 있어도 그는 외롭지 않다. 오래 살아온 아내를 버리고 새 애인을 사귀는 것을 재간처럼 여기다가 게도 구럭도 다 잃고 만인들의 질타 속에 신세가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재수 없는 일도 어디 적은 일인가. 처음처럼 마감을 하는 사람의 속성이 깊이 우러나고 아름답다.

류일복(중국동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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