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혼스'

입력 2014-11-27 07:48:36

이 영화를 주목하는 이유는 원작자 '조 힐' 때문이다. 2010년에 출간한 그의 소설 '뿔'은 전 세계 22개국에 번역되었고 '뉴욕타임스' 6주 연속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영화 '혼스'가 단순히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 힐은 바로 장르 문학의 거두 스티븐 킹의 아들이다. '샤이닝' '캐리' '미저리'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 등 수많은 호러, 스릴러 걸작들의 원작을 쓴 인물의 아들이 자신의 유명한 아버지처럼 장르 소설을 쓴다는 것에는 명암이 함께한다. 그가 본명인 '조셉 킹'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힐'이라는 가명을 쓰는 것은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작가적 세계를 펼쳐보이겠다는 야심의 발로이다. 그는 공동제작자로 영화 '혼스' 제작에 참여하며 판타지 호러라는 영화장르를 통해 아버지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발걸음을 시작했다.

'해리포터'의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주인공 '이그'를 맡아 순애보 넘치는 순정남에서 분노로 이글거리는 악마까지 두 얼굴의 연기를 펼친다. 연출은 프랑스 출신의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이 맡았다. 아야는 20대 초반에 연출한 '엑스텐션'(2003)이란 공포영화로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한국영화 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인 '미러'(2008), 3D 블록버스터 '피라냐'(2010) 등을 통해 공포영화계의 젊은 거장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치밀한 플롯의 작가 조 힐,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대표주자 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 하드고어(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로 유명한 감독 알렉산드르 아야 등 삼총사의 콜라보레이션이 기대감을 높인다. 그들이 모여 만든 영화 '혼스'는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합장르인데, 판타지 호러 스릴러 코미디 액션 로맨스라 해야 할 지경이다. 게다가 사이키델릭, 그런지 풍의 음악영화적 요소까지 들어가 있어, 영화는 전 세계 10대들을 열광에 빠뜨린 '트와일라잇'보다 몇 발자국 더 나아간다.

첫사랑이자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던 메린(주노 템플)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이그(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는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지만 사람들의 의심과 경멸 속에서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이그의 머리에 악마의 상징과도 같은 뿔이 돋아난다. 그의 뿔을 마주한 인간들은 자신들 마음속의 잔인한 본성과 추악한 욕망을 숨김없이 이그 앞에서 토로한다. 이그는 저주받은 능력을 이용하여, 여자친구를 죽이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진짜 살인범을 찾아나선다.

뿔이 난 주인공은 '천사였다가 추락하게 된 악마'라는 타락천사 루시퍼의 이미지에서 모티프를 빌려왔다. 친구와 이웃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모까지도 살인용의자 이그를 부담스러워 하는 가운데, 절친인 리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는다. 이그의 이마에 난 악마의 뿔을 목격한 자들은 자신의 마음 깊숙이 자리한 은밀하고 음탕한 본심을 털어놓는다. 이그는 이 상황을 이용하여 하나하나 비밀을 풀어간다. 비밀의 열쇠가 하나씩 열리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죽은 여자친구 메리의 본심마저도 의심하게 되고, 굳건한 믿음과 신뢰는 모두 깨지고 만다.

사랑에 빠졌을 때 모든 것이 아름답고 순수한 것으로 보였지만, 절망에 빠졌을 때는 똑같은 대상이 허영과 탐욕으로 가득 찬 것으로 다시 보인다. 이그의 눈으로 다시 세상을 보니, 선과 악, 빛과 그림자, 희망과 절망, 사랑과 미움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사랑하고, 믿고, 기대하는 마음이 언제나 필요하지만, 또 다른 한편 노여워하고, 분노하고, 처벌함으로써 세상은 조화를 이룬다.

이 영화는 아야 감독 특유의 하드고어적인 호러를 생각했다면 기대에 미치지 않겠지만, 대중적이고 사랑스러운 판타지 로맨스를 기대한다면 만족스러울 것이다. 해리포터의 영특한 소년 이미지에서 벗어나 진정한 연기파 배우의 길을 가기 위해 애쓰는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변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가 주연한 또 다른 영화 '킬 유어 달링'과 '왓 이프'를 보면 그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변신하며 연기의 맛을 알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속 악마의 뿔과, 불타는 날개와, 축축한 땅을 기어다니는 뱀들의 모습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은 혐오스러운 악으로 가득 차 있고, 악을 처벌하는 더 큰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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