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중국동포 한국 생활기] 리더십의 공부

입력 2014-11-20 07:34:40

내가 좋은 재목이 아닌 평범한 나무인 걸 알고는, 내 자리가 아닌 단상을 깨닫고 나니 그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나로 돌아와 심방에서 걸러져 나오는 속 후련한 웃음을 한 번 웃어본다.

"한 라인의 책임자는 단지 자기 일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량을 줄이고 일 효율을 내도록 자기 팀을 잘 단합시켜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이번 달 말 회의에서는 꼭 한 사람 추천하도록 합시다."

우리 회사 반장 자리 하나가 비어 있었고 사장이 조회 때 나한테도 눈길을 주면서 거론한 것이 두 번째다. 천생 리더십이 모자라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속에 두지 않았던 나는 사장의 희망사항이 담긴 눈빛에 천착의 마음이 생성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른 급여 조정도 있겠지만 동료들 중 가장 오래되었고 열심히 일해 왔다고 자부하는 터라 자존심의 승부욕이 끓어오르지 않으면 나로서는 속없는 숙맥으로 치부할 것 같다. 몸으로만 때워오던 내가 깜빡 권리욕에 달떠버리고 물밑 작업까지 개시한 것이다.

사장한테 뜬금없이 안 하던 짓으로 가끔씩 선물을 챙겨주면서 내가 보기에도 과장된 청승을 떨었다. 동료들 속에 두각 내고자 이용가치 있는 상대는 막론하고 손을 들어주고 빠지던 술추렴(술값을 여러 사람이 분담하고 술을 마심-편집자)에까지 적극적으로 나서 그러모으면서 이 기간만 눈을 찔끔 감고 경유하면 그뿐이라는 계산을 앞세웠다. 그 와중 아예 눈빛을 맞추기 어렵거나 의견상 껄끄러운 상대는 어떡하나 나의 비밀노트에서 제거 대상이었다.

함께 짝이 되어 일하는 62세 되는 동료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어느 편에도 편승하지 않는 곧은 성격에 바른 소리를 잘했다. 갑자기 온역에 전염된 듯 안 하던 짓을 하던 내가 안쓰럽다고 가만히 뚱겨주기도(눈치를 주기도-편집자) 했다. 내게는 때에 따라 다르듯이 그 시간 그 귀띔이 더 이상 고스란히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오히려 설늙은이가 일축은 못 내고 나한테 그 버거움이 돌아오는 데다 나잇살이나 먹었다고 남을 훈계나 하려 든다고, 트집을 잡은 때도 그때였다. 언제부터 이 상어른한테 토를 다는 몹쓸 버릇이 생겨났을까. 특히는 자기 가족을 위해 아껴먹고 아껴 쓰면서 동료 회식에도 한 번 나가지 않는 그를 인색하고 나잇값을 못한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기에 열을 올렸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의 진급 걸림돌이듯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냐고 철없는 아이처럼 그러고 못되게 살았다. 아니 나는 이미 그의 상급으로 결정된 듯이 건방진 폼을 잡았는지도 몰랐다.

그가 병으로 퇴사하면서 난데없이 자아망상증은 물벼락 맞은 불씨가 되었다. 고향집으로 귀가하면서 송별의 악수를 잡아주지도 않던 그 아저씨의 모습이 아직도 내 마음에 상처의 더께가 되어 있다. 내 진실된 마음이 담기지 아님이었을까. 그를 흉볼 때 그도 내 뒤에서는 흉보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또 그렇게 옥생각(옹졸한 생각-편집자)으로 마음에 생채기를 냈었던 부끄러움이 더욱 자신을 능멸했다.

다 같은 마음으로 멀리 객지에서 고생스레 직장생활을 하여오고 있건만 이 무슨 당토치도 않은 서로 배척하는 자석의 극과 극 사이인가. 그의 확실한 부재를 실감하고 나서야 후련하지 않고 오히려 냉돌처럼 싸늘해 났던 내 마음이었다. 혹시 나 때문에 오랫동안 상처 나지는 않았을까 하는, 사람의 마음은 요상했다. 사람은 없을 때 그리워하고 처참한 외로움은 나를 만감으로 돌아보게 했다.

꿈꾸는 리더의 입장에서 아저씨한테 늦게나마 허리 꺾어보았다. 나이 든 동료는 결코 성 쌓고 남은 돌이 아니다. 그들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경력과 슬기가 있다. 참된 사람은 더 안 되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더 잘 되라는 것이 결코 이 세상 이치가 아니라는 것을 어리석은 나로서는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일이 흘렀다. 그가 없는 일터에 서면 "한 수 더 가르쳐주고 가시지" 하는 실격의 부끄러움이 한없이 구멍 난 틈새처럼 밀려들어 왔다.

작은 벼슬에라도 오르면 자신의 이미지가 격상되는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어느 승려의 참선처럼 대책 없는 표현력으로 거듭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승직에 제동을 거는 게 낫다. 원래부터 내 자리가 아닌 반장 자리에서 빠지겠다고 사장한테 알렸다. 이대로 지금 내 자리가 정직하고 마음 편하다고 솔직히 이야기를 드렸다. 내심 그 무엇보다 금이 간 동료들 사이를 봉합하고 화해와 단합으로 이끌어나갈 화통함이 어려운 리더십임을 숙제로 안았다. 리더의 길은 편협하고 옹졸함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이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건방지게 하는 위험한 장치다.

내가 좋은 재목이 아닌 평범한 나무인 걸 알고는 내 자리가 아닌 단상을 깨닫고 나니 그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나로 돌아와 심방에서 걸러져 나오는 속 후련한 웃음을 한 번 웃어본다. 직장 생활이 바로 그런 즐거움과 대인관계를 가르쳐주는 인생교습소 같은 곳이 아니겠는가.

류일복(중국 동포 수필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