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동의 유럽 미술관 기행] ⑥있는 그대로의 현실 가치없이 그린 쿠르베

입력 2014-11-15 07:33:24

한겨울 냉기, 코끝이 시리는 오싹한 풍경화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된 쿠르베 작품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된 쿠르베 작품 '폭풍우 치는 바다'

쿠르베(1819~1877'프랑스 사실주의 화가)의 풍경화가 주는 느낌은 한겨울 냉기에 코끝이 시릴 정도의 오싹함에 비유하고 싶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맑고 쨍한 겨울 골짜기의 메마른 숲을 그린 리얼리티 앞에서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의 명료함을 깨달은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최근 쿠르베의 작품에서 충분한 리얼리티를 볼 수 없다며 한 여성 현대미술가가 오르세미술관에서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 화제가 됐다. 전시 중인 쿠르베의 누드작품 '세상의 기원' 앞에서 돌발적인 행위예술을 펼친 것인데 나중에 행위예술을 '기원의 거울'로 명명한 뒤 '예술/외설'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일반적으로 관람객들은 쿠르베의 파격적인 작품 앞에서 당혹해하기 마련인데 갑작스럽게 해괴한 일까지 목격했으니 쿠베르의 작품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쿠르베의 작품에서 사실주의 정신은 부르주아의 위선과 타성에 젖은 관습에 맞서 진실에 도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쿠르베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기만하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비타협적인 공화주의자로서 프랑스 2월 혁명(1848)의 한가운데 섰던 소신 있는 사람이었다.

오르세미술관에는 쿠르베의 가장 대표적인 걸작들이 있다. 특히 '오르낭의 매장'(1850)과 '나의 화업 7년간의 알레고리'라는 부제가 붙은 '화가의 아틀리에'(1855)는 압권이다. 그 밖에도 거친 파도를 그린 대형 작품이 있는데 그가 가장 즐겨 그린 테마 중 하나다. 그가 직시한 현실이란 그림 속 폭풍우가 몰려오는 해변의 작은 피난처와 거대한 파도에 떠밀리는 고깃배들처럼 보잘것없지만 강인하기도 한 민중들이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오르세미술관 다음으로 인상적인 쿠르베의 컬렉션을 가진 곳은 몽펠리에의 파브르미술관이다. 이곳은 쿠르베의 작품으로 독립된 하나의 방을 꾸미고 있는데 대표적인 두 작품 '욕녀들'(1853)과 '만남/안녕하세요 쿠르베씨'(1854)가 포함돼 있다. '욕녀들'은 관능적 표현이 지나쳤던지 권력자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던 모양이다. 살롱을 찾은 나폴레옹 3세가 들고 있던 채찍을 내리쳤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그러나 몽펠리에의 진보적인 부르주아 인사 브뤼야스는 그 그림을 보자 '여기에 자유가 있다'고 외쳤다고 한다. 그 작품의 구입을 결정한 인연으로 쿠르베가 몽펠리에를 방문했고 후원자 앞에서도 결코 저자세를 보이지 않고 당당한 포즈로 그와 조우하는 장면을 그린 '만남'을 남겼다. 브뤼야스의 유증으로 파브르미술관이 간직하게 된 이 그림 속 쿠르베의 모습은 도도해 보일 만큼 당당하지만 그가 결코 허풍쟁이가 아님을 예술적 성취로써 증명했다.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취한 쿠르베이지만 내용은 범속하지 않다. 이들을 관통하는 한결같은 정서는 가난하고 아무 권력도 없는 민중과 노동자들에 대한 동정의 마음이다.

도발적으로 보일 만큼 야한 그의 여성 누드들은 당시 남성들의 시각에는 오히려 불편함을 야기했을 수도 있다. 쉽게 굴복시킬 수 있을 나긋나긋함이 아니라 위선적인 엄숙함을 파괴할 정도로 뇌쇄적인 관능미로써 여성미의 진정한 가치를 예찬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근대인의 것이었다. 그래서 파브르미술관은 쿠르베의 방을 '근대의 시작'이라는 전시항목 아래 그 첫머리에 배치하고 있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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