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지만 사람들이 거의 잊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자신만은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죽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에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어느 날 의사로부터 "당신은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이제 사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란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대다수 사람들은 우선 의사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내가 왜 그런 병에 걸렸어. 의사인 당신이 오진했어"라며 또 다른 병원을 찾아가서 진찰을 받습니다. 여러 병원을 방문하여 진찰을 받지만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때 사람들은 "하느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몹쓸 병을 앓아야 합니까?"라며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또 "우리나라 의학이 발달한 줄 알았는데 이런 병도 못 고치는 것을 보니 의학이나 과학이나 다 부질없는 것이야"라며 세상을 원망합니다.
이러한 원망을 해도 자신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데, 시시각각 자신이 차츰 쇠약해지는 모습 때문에 자존심이 상할 뿐 아니라 우울증 증세를 보이게 됩니다.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심정에서 사람들은 친구들이나 이웃들의 병문안을 받는 것뿐 아니라 가족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것조차 거부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거부할수록 외로움은 더 커져갈 뿐 아니라 죽음이 더욱 빠르게 자신에게 다가옴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은 삶과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고, 또 자신이 평소에 하지 못한 것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병원에서 치료받기보다 오히려 가족들과 여행을 하고 싶어 하고,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과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세상 사람들과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남몰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존재와 영원한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세상 사람들과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슬퍼하던 사람이 눈물을 멈추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며,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에게로 부르시고 계시기에 비록 우리가 육체적으로 죽더라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옮아가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 시간의 문을 닫지만 영원의 문을 여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또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세상에서 이별을 하지만 언젠가 하느님 앞에서 다시 만날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이 인간 삶의 마지막 말이 아니기에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새로운 세계로의 열림이기에 인생은 죽음을 향한 돌진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향한 순례입니다. 인생은 영원으로 나아가는 죽음의 문이 있기에 희망입니다.
김명현 대구 비산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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