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8시에 가질 필자의 기획공연 이름에서 원고 제목을 땄다. 피아노 트리오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을 초청해 음악적 경계를 허물고자 기획된 공연인데 피아니스트는 클래식을 전공하였고 베이시스트는 재즈를, 타악기 연주자는 국악인이다. 장르나 국적의 구분이 무색하게끔 음악의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음악을 망라하여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자 한다.
사실 우리 같은 공연장은 1년 중 가을이 제일 바쁘다. 가을에는 허한 마음을 달래려는 사람들이 특히 많아 각종 행사와 공연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원고를 쓰려 노트북을 켰더니 바탕화면에는 정리되지 못한 각종 파일이 널브러져 있다. 눈코 뜰 새 없는 요즘을 상징한다고나 할까. 글을 쓰자니 마음이 어수선하여 잠시 파일정리를 했다. 기획서는 서류 폴더에, 공연사진은 사진 폴더에 그리고 구분하기 힘든 불특정파일은 '기타'라는 폴더를 만들어 저장하고 나서야 바탕화면이 말끔해졌다.
사람들은 '구분 짓기'를 좋아한다. 모르긴 몰라도 노트북 바탕화면 파일을 구분하여 폴더 정리를 하는 것처럼 편의상 하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융합이니 퓨전이니 하는 말들이 화두인 지금 이 시대에 예술이 그렇게 되는 것이 못마땅하다. 가령 '국악'은 서양음악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에게 그것은 그저 '음악'이었다. 그러나 '양악'(洋樂)과 구분 짓고자 앞에 국(國)이란 글자를 붙였다. 이런 구분 짓기는 고정관념이 되어 예술에 정체 혹은 비효율을 초래하기도 한다. 갇힌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단적으로 보자면 관현악단은 독주악기가 무리 지어진 것으로서 음악적 표현의 폭을 크고 다양하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효과에 대한 고려가 이뤄지지 않은 악기들이 국악관현악에 한데 모여 있다. 여기에는 첼로나 더블베이스 역할을 할 수 있는 저음 악기도 없을뿐더러 우리 악기에는 특유의 '농현'(거문고'가야금'해금 등 현악기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고 본래의 음 외에 여러 가지 음을 내는 기법)이라는 특징이 있어 관현악 합주에 있어 적합하지도 않다. 참고로 중국의 전통관현악단은 서양의 악기와 전통악기를 함께 연주한다.
우리는 미국산 햄버거를 아침으로 먹기도 하며 이탈리아 피자를 점심으로 먹기도 한다. 요즘은 베트남 쌀국수가 인기 식품이 되었다. 나아가 우리 전통음식과 더불어 새로운 퓨전요리가 각광을 받기도 한다. 일상에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또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사랑하는 감정은 시공간 따위와는 상관없다는 말인데, 바꿔 말해 감정에서도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말이겠다. 하물며 삶의 희로애락을 소리로 담은 음악이야말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준다.
음악을 통해 감동을 받는 것에 '경계'란 무의미한 것이다. 재즈면 어떻고 국악이면 어떤가, 클래식이면 어떻고 가요면 또 어떤가. 우리가 교감하고자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저 한(恨)이요, 또 흥(興)이다. 음악의 역할은 이렇게 즐거움과 위로를 주는 데 있지 않은가. 얼마 전에 담장 허물기 운동이 사회 이슈였다. 구분하고자 지었던 벽을 허문다. 음악에도 이런 운동이 많았으면 좋겠다. 구분 짓기는 분리수거를 할 때나 하면 될 것 같다.
이예진(공연기획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