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베를린 장벽과 DMZ

입력 2014-11-10 10:41:12

동'서 베를린을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을 처음 만든 것은 동독이었다. 당시 동독은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보다 우수하다고 선전했다. 서독의 파시스트들이 넘어와 동독의 사회주의를 훼손하는 것을 어떻게라도 막아야 했다. 동'서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40여㎞, 서베를린을 에워싼 155㎞ 장벽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는 오판이었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9일 허물어지기까지 내내 동독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징물이 됐다. 동독은 이 벽을 '반 파시스트 벽'이라고 불렀지만 서독은 이를 '수치의 벽'이라 불렀다. 장애물이 서 있던 28년 동안 5천여 명의 동독인들이 이 장벽을 넘으려 했고 이 가운데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됐다. 이날 온종일 독일 베를린 시내는 인파로 북적였다. 장벽 붕괴 기념행사가 열린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은 물론 검문소가 서 있던 곳엔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렸다. 독일정부는 이날 장벽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장벽과 똑같은 3.6m 높이로 15㎞에 걸쳐 7천 개의 흰 풍선을 매달아 분위기를 띄웠다.

전 세계가 이날을 기념하는 것은 '그날' 이후 지구촌이 극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동독인들이 장벽을 허문 후, 독일은 통일됐고 소련은 해체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 드리웠던 냉전의 그림자는 사라져갔다.

이날의 주역은 독일 메르켈 총리였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그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동독에서 성장했다. 25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서독으로 향하는 긴 줄이 이어질 때 그 속엔 훗날 독일 총리가 된 메르켈 자신이 있었다.

메르켈은 이날 베를린 장벽에 장미를 헌화하는 이벤트를 가졌다. 그리고 '과거 동독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그릇된 국가였다'고 회고했다. '오늘은 자유의 날인 동시에 (자유를 위해 싸우다 숨진) 희생자의 날 '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세계는 한반도에 주목했다. 모두 다음 순서는 한반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지나도록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 중이다. 북한은 3대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그릇된 국가로 남아 있다. 북한 주민들 힘으로 허물어뜨리기엔 155마일 휴전선 철책은 너무 길고 넓고 높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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