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을 취한 우리 팀은 다시 깊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동굴에서는 몸을 움직일 때 항상 손과 발이 가는 곳을 확인하고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미끄러져 삐끗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날카로운 생성물도 많고, 미끄럽기 때문에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침니(굴뚝 속과 같은 지형)나 크랙 등을 타고 등반할 때는 항상 3개의 지점이 밸런스가 잡혀야 하기 때문에 벽에 붙어 나아가야 한다. 손 두 쪽과 발 한쪽의 밸런스를 유지한 뒤 나머지 발 한쪽을 이동하고, 발 두 쪽이 지지되고 손 한쪽이 확실하면 나머지 한쪽을 움직이는 식이다.
환선굴 탐사 때는 추락 등의 안전사고가 없이 무사히 이동했다. 그렇게 조심해서 이동하는 중 다시 넓은 광장이 나왔다.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는 웅덩이 같은 지형이 있었고 그 뒤에는 웅장한 절벽이 우리를 마주했다.
환선굴의 막장이었다. 우리는 그 웅장한 자태에 잠시 넋을 잃고 '우와~ 역시~' 하며 탄성을 토해냈다. 4시간 가까이 땅속을 헤맨 보람이 있었을까. 그 웅장한 자태는 한마디로 절경이었다. 이곳까지 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그만큼 지루하고 힘들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다시 나가려고 하니 걱정되었다.
막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서로를 보살폈다. 역시나 여자대원들이 체력적으로 조금 더 힘들어하고, 추위도 더 많이 탔다. 동굴은 바깥 기온보다 훨씬 더 낮다. 대부분의 동굴은 습도가 80%가 넘는다. 그만큼 열 전도가 빠르다. 15도 전후의 기온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으슬으슬했다. 물론 몸을 움직이면 몸에서 나는 열로 그 한기를 느끼지 못하지만, 문제는 좁은 구간을 한 명씩 통과할 때 대기시간이다. 차가운 바닥에 단열재 없이 앉아, 기대어 있으면 으스스한 한기가 뼛속까지 스미는 듯했다. 추위는 몸을 둔하게 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해 탐험할 때는 항상 추위를 조심해야 한다. 근래에는 폴라폴리스로 된 성능 좋은 내피를 동굴복 안에 입는다. 내피는 보온은 되면서 물기는 머금지 않고 자연스레 빠져나가 뻣뻣하거나 무겁지 않다.
이런 소재가 나오기 전에는 정비공들이 입는 뻣뻣한 면으로 된 원피스 옷을 입었다. 그 옷은 방수는커녕, 물을 머금으면 무겁고 피부에 달라붙으면서 움직임을 방해한다. 보온도 안 되고, 진흙이 피부로 많이 스며들었다.
다시 동굴을 나가야 한다. 천천히 조심스레 온 길을 되짚어 나아갔다. 슬슬 필자도 체력적으로 부담이 오는 것을 느꼈다. 탈굴을 무사히 하려면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한다. 순간적인 실수를 해 어디 한 군데라도 삐끗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니, 아찔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성한 몸으로도 힘든 좁은 4시간 거리를 기어가야 하기 때문에 다치면 큰일이다. 나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곤란해진다. 우스갯소리로 '동굴에서 누가 다치면 안에 불침번 세우고 부러진 곳 다시 붙여 아물 때까지 밥 넣어주고, 같이 있어 줘야지' 했던 말이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산에서 사고가 나면 헬리콥터가 사람을 쉽게 실어 나를 수 있지만, 동굴 안에서는 들것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것조차도 힘든 구간이 대부분이다.
어쨌든 무사히 다친 사람 없이 다시 Y계곡 입구 일반 탐방로로 나왔다. 들어갈 때의 의기양양하고 힘찬 발걸음과는 다르게 물에 젖은 생쥐처럼 흠뻑 젖은 몰골로 철계단을 넘어왔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보는 것이지만, 철계단과 안내판 등 사람의 흔적이 매우 반가웠다. 무사히 나온 것에 서로 축하를 하고 인원을 점검하였다. 벌써 환선굴 개방시간이 지나서 관광객들은 다 빠져나가고 탐방로의 불도 모두 꺼져 있었다. 우리는 헤드램프 등이 있어 불편함 없이 데크길을 따라 출구로 향했다. '따각~ 따각' 하는 발소리만이 넓은 동굴을 울렸다.
탈굴을 외치며 바깥으로 나왔다. 벌써 깜깜한 밤이었다. 1시간은 더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참아왔던 피곤함과 허기가 밀려왔다. 내려가면서 동굴 탐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왜 여기까지 와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지막은 항상 같은 결론이 나온다. '동굴이, 자연이 좋으니까. 함께하는 사람이 좋으니까.' 그래서 다시 탐사에 나서는 것이라고.
내려와서 푸짐하게 저녁을 먹으며 막걸릿잔을 기울였다. 모두들 10시간 동안의 강행군에 피곤할 것이 분명했지만, 누구 하나 쉬러 가는 사람 없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술잔을 기울였다. 동굴인들은 모였다 하면 그 동네 술을 모두 먹어 없앨 정도의 주당들이다. 오늘도 여지없이 동굴인들의 밤이 깊어간다. 많은 동굴인들의 전초기지였고, 그들의 추억을 간직한 대이리의 밤이 잔을 타고 흐른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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