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g song 자연을 노래하다, 청송] <중>구순 맞은 청송사과

입력 2014-10-29 07:15:33

독립운동가 품에 안겨 온 사과나무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 569번지. 독립운동가 박치환은 1924년 12월 이곳에서 사과 묘목을 처음 심었고 1931년 사과를 처음 수확했다. 박치환의 손자 박효일 씨는 지금까지 대를 이어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전종훈 기자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 569번지. 독립운동가 박치환은 1924년 12월 이곳에서 사과 묘목을 처음 심었고 1931년 사과를 처음 수확했다. 박치환의 손자 박효일 씨는 지금까지 대를 이어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전종훈 기자
박치환 씨
박치환 씨

올해 구순(90)을 맞는 청송사과는 특유의 깊은맛처럼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산골마을 먹을거리 없던 시절 독립운동가이자 농촌계몽운동가였던 박치환(1878~1968)이 처음으로 사과나무를 청송으로 들여오면서 청송사과의 역사가 시작됐다.

◆청송 산골마을에 사과꽃을 피운 독립운동가 박치환

이달 22일 오후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 569번지. 청송에서 처음 사과가 열렸던 이곳에서 사과를 도입한 독립운동가 박치환 씨의 손자 박효일(70) 씨를 만났다. 박씨 집안은 박 씨 할아버지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박 씨는 "할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사과나무를 가져와 이곳에 처음 심었다고 아버지에게 전해들었다"며 "3대에 걸쳐 사과농사를 짓고 있으며 이곳이 청송사과 역사의 시작인 만큼 오랫동안 보존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씨에 따르면 그의 조부는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 출신으로 효선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1919년 3월 구천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쫓겨 중국과 시베리아, 일본 등지로 망명했다고 한다. 1924년 고향 인근인 청송군 현서면에 정착했고 귀국 당시 사과품종인 국광 10여 주를 일본에서 들여와 청송에서 최초로 사과나무를 심었다.

당시 청송은 산골마을로 과일이 귀했고 사과 역시 마을 사람들에게는 생소했다. 그는 이후 7년쯤 나무를 정성껏 키워 사과를 수확했고 인근 주민들도 이 사과 맛을 본 후 그를 통해 사과나무를 일본에서 수입해 심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청송군 현서면을 시작으로 현동'안덕면에서 사과나무 군락지가 생겼다.

박 씨의 조부는 이후 일본에서 우리나라 초기 사과품종인 아사이와 야마도니시키 등을 수입해 청송지역에 전파했다. 신(新) 문물에 밝았던 박 씨의 조부는 사과뿐만 아니라 산양(젖양)과 양배추, 씨감자, 토마토, 당근, 자두 등도 들여와 마을 사람들에게 보급했다.

박 씨는 "아버지가 10살 되던 해인 1924년 12월에 사과나무를 심었고 할아버지가 일본에 다녀오는 날이면 이웃 주민들이 새로 들여온 물건을 구경하려고 집에 모였다"고 했다.

박 씨의 조부는 농촌계몽에도 힘을 썼다. 현서면 화목교회 첫 장로에 임명된 그는 사과농사로 돈을 벌어 동네 목욕탕을 지었다. 이후 동네에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을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머리를 깎이는 등 아직 그의 고마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 씨가 청년 시절을 보낸 1960년대까지 그 시절 도움을 받아 객지에 나간 사람들이 고향을 찾을 때면 꼭 박 씨의 조부를 찾아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박 씨는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잇고자 나도 현재 화목교회 장로를 맡고 있다"며 "청송사과의 기술력과 품질도 깊은 역사 속에서 피어난 것이며 그것을 우리 농민들은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사과 역사가 깊은 마을에서 30년 넘은 고목이 아직도 사과 생산

독립운동가 박치환이 처음 사과를 도입한 청송군 현서면 일대는 역사적인 마을답게 30년 넘는 고목들이 존재한다. 현서면 두현1리 대거리길 이세건(84) 씨의 과수원에는 사과품종 중 동북7호라는 초기 후지 나무가 10여 그루 남아있다.

청송에 처음 도입된 국광 이후 크기와 색깔, 맛이 월등한 동북7호가 일본에서 수입돼 1970, 80년대 신품종으로 지역에 널리 보급됐다. 그때 심어진 나무가 지금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무는 제일 많이 생산했던 때의 60% 정도를 지금도 수확할 수 있고 한 나무당 100~140㎏ 정도 사과를 생산한다. 지금의 과수농가에서 키우는 사과나무 크기의 5~10배 정도 무거운 가지를 지탱하려고 10여 개의 지지대가 나무를 받치고 있다. 당시에는 사과나무 사이의 간격을 6m로 두고 서로 뿌리가 닿지 않게 재배를 했다. 현재와 비교하면 면적당 사과 생산율이 25% 수준이라고 한다.

김종찬(52) 안덕면 감은2리 이장은 "지금은 사과의 양과 품질을 위해 사과나무를 밀식 재배하고 크기를 제한하지만 예전 농가에서는 나무가 가지도 넓게 뻗고 크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농사를 지었다. 그 이유 때문에 고목들이 지금까지 무탈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신품종 사과가 개발되고 그에 따라 농가도 고목을 뽑아내고 신품종 묘목을 심는다"며 "지역에 얼마 남지 않은 고목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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