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칼럼] 지금, 개헌 노닥거릴 때인가

입력 2014-10-27 11:33:37

1952년 전시수도 부산에서 개헌파동이 있었다. 당시 헌법은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이승만을 다시 대통령으로 뽑지 않으려고 했다. 6'25로 나라가 존망지경에 이르렀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 나라를 이끌었던 이승만을 축출하려고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야당 정치인들과 타협을 거부했다.

한국 관련 저서를 8권이나 남긴 로버트 올리버 전 유엔한국단 고문을 포함한 일군의 인사들은 과거 미국처럼 "국회의원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보고 그들의 선거구 숙원사업에 예산도 배정하면서 환심을 사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것은 미국식'이라며 한국은 한국식으로 대통령을 선출해야한다는 말과 함께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생각한 한국식 대통령 선출 방식은 국민들이 그들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간선제 대신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기를 주장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이를 막으려는 거대 야당으로 구성된 국회의 충돌은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부산에서는 게릴라가 준동, 계엄령이 선포됐다. 계엄령 하의 험악한 분위기에서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심야'날치기'초헌법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인채 통과시켰다. 국회의원들이 장악하고 있던 대통령 선출권을 국민의 손에 되돌려준 것이다.

이승만의 개헌을 포함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건국 이후 66년간 9번의 개헌을 해왔다. 4'19 때는 내각제 개헌을 했다가 1년도 안 돼 쿠데타가 일어났다. 지금의 헌법 체제는 소위 말하는 '87년 체제'이다. 87년 체제의 핵심은 대통령 5년 단임제이다. 요새 고개들고 있는 개헌론은 대통령 4년 중임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다양하게 쏟아져나오고 있다. 일본이나 영국처럼 대통령 없는 순수 내각제 지지파는 소수이다. 무엇이 됐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거론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상하이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발언은 본인의 실수였다고 하루만에 꼬리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김 대표가 대통령과 총리가 외치와 내치를 나눠맡는 이원집정부제를 거론하면서 이원집정부제의 대표적인 나라인 프랑스를 예로 들지 않고 영세중립국이면서 인구 800만에 불과한 오스트리아를 벤치마킹 모델로 거론한 것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6년 중임)는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각료 임명권과 법률 공포권, 법률안 재심의 요구권, 의회 해산권 등이 있는 프랑스(5년 중임)와는 달리 대통령이 조약 체결 등 대외적인 역할에만 치중한다. 실제로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은 거의 포기되고, 국회에서 뽑는 실세 왕총리가 국정을 주무르게 된다. 국민의 신뢰도 바닥인 국회가 왕총리까지 내세워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

야당들이 김무성 대표의 개헌론에 반색하는 것은 정부의 각종 지원은 받으면서도 야당답지 못한 야당으로 지지율이 바닥을 맴도는 상황에서 이대로는 도저히 정권 교체가 어렵다는 내심의 표현이 아닌지 모르겠다. 정권 교체는 그만두고, 적당히 정부로부터 국고 보조받으면서 장차관이나 나눠먹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셈법이라면 집어치워라.

과연 국회 선진화법이 있어서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어느것 하나,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입법권을 휘두르면서 온갖 특혜를 누리고도 반년 가까이 법안 처리 하나 하지 않는 국회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는가.

김문수 혁신위원장이 지금 국민들은 아무도 개헌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을 국회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수출은 전혀 되지 않고, 제조업 성장은 마이너스에 주요 대기업의 어닝쇼크에다 차세대 성장동력이나 원천기술하나 갖고 있지 못한 대한민국호가 나락으로 떨어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있는 위기 시점에 무슨 한가한 개헌놀이를 하고 있는지….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 지금 국민들은 끼니 걱정, 다락같이 오른 부동산 걱정, 앞으로 수년 내 부동산 거품이 빠질 때 초래될 수 있는 경제적 충격, 도처에 썩어 문드러지는 비리 때문에 골머리가 지끈지끈한 데, 국회의원들은 권력 놀이나 하고 있다. 국회, 참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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