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방폐장보다 더 민감한 '핵 폐기장' 올라

입력 2014-10-22 11:07:20

우리나라는 1978년 경남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원자력발전 시대를 연 뒤 35년 동안 원자력발전을 통해 전기를 만들어왔다. 현재 경상북도 경주와 울진, 전라남도 영광 등지에 23기의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으며 5기가 추가로 건설 중이다. 정부는 울진 등 4기의 원전을 추가로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원전은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양의 전기를 생산해내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발전소 가동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 때문에 큰 논란을 낳아왔다.

폐기물 가운데 상대적으로 방사선 세기가 낮은 폐기물 처리장은 경주에 들어섰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불거졌다. 방사선 세기가 강한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다.

국내에서는 1만3천t 이상의 사용 후 핵연료가 발생, 현재 원전 내에 저장 중이며 매년 약 750t씩 늘고 있다. 이를 처리할 공간을 이제는 찾아야 한다는 정부 입장이 최근 확고해진 이유다.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 특히 경북도의 경우, "경북이 핵폐기물 쓰레기장이냐"는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 입지를 찾기까지 갈등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사용 후 핵연료란?

원자력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중'저준위 폐기물로, 방사선 작업자들이 사용했던 작업복이나 휴지, 장갑, 그리고 각종 폐부품 등이다. 방사선의 세기가 낮거나 중간 정도 된다는 의미에서 중'저준위 폐기물이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고준위 폐기물이다. 원자로에서 약 3년의 연소 과정을 거친 폐연료인데 '사용 후 핵연료'로 불린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현재 경주에 건설 중인 방폐장이 연말 준공되면 그곳에 영구 처분할 계획이다.

문제는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다.

정부는 2004년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먼저 건설하고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을 마련한다는 국가정책을 수립했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고 또한 해외의 건설 사례 및 운영 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에 안전성 확보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용 후 핵연료를 관리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사회 정치적으로나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고 매우 복잡한 실정이다.

◆사용 후 핵연료 꽉 찼다

안면도'부안 사태 등 20년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정부는 2005년 11월 경주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로 선정, 중'저준위 폐기물 문제에 대해서는 한숨 돌렸다.

하지만 사용 후 핵연료가 문제로 남았다. 현재 추세라면 오는 2016년에는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이 포화 상태가 된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급한 대로 저장 간격을 좁혀 사용 후 핵연료를 좀 더 빽빽하게 채우고,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 저장 공간이 좀 더 여유가 있는 원전으로 옮겨 저장한다고 해도 2024년에는 그마저도 포화가 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임시저장이 아닌 별도의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원자력발전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사용 후 핵연료의 최종 관리 방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폐기물로 간주, 지하 암반 500m에 영구 처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용 후 핵연료에 들어 있는 유용 물질을 회수해 재활용하고 나머지만을 영구 처분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중 어떤 방안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구처분은 기술적으로 안정된 부지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처분장을 운영하는 국가가 없어 기술적인 검증을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반면 재활용을 위해서는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나 핵 확산 문제를 우려, 재활용 불가를 기본방침으로 하고 있는 미국의 동의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활용 또는 영구처분하기 전까지 사용하기 위한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한다 해도 부지 확보 기간을 제외하고도 6~7년은 소요된다. 최소 3년 후인 2017년까지는 저장 방식과 규모, 기간 그리고 부지가 결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확보에 20년이 걸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3년은 너무 촉박한 시간이란 지적도 있다. 최종 선정까지 난관이 예상되는 것이다.

◆어떻게 풀어갈까?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문제는 원전 선진국에서조차 난제다. 세계적으로 400기가 넘는 원전에서 매년 1만2천t 이상의 사용 후 핵연료가 발생하는데 아직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는 국가는 없다. 핀란드, 스웨덴만이 처분 시설 부지를 선정한 상태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2020년쯤에 처분장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국 상황에 따라 공론화 기간과 형태는 서로 달랐지만 다양한 의견을 통합, 해법을 찾아 공론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원전지역 공개회의와 공청회, 환경단체 서면 의견 수렴, 토론그룹 운영, 이해관계자 대면토론 등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직접적으로 수렴한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사용후 핵 연료 관리 문제는 기술공학적 측면은 물론이고 경제와 사회적 관심 사항이 고려돼야 하는 복잡한 사안이어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의견 개진은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대책 수립을 위해 최근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공론화에 착수했다. 논의 결과를 토대로 관리대책을 수립하겠다는 계획도 확정했다.

그러나 "정부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사업은 절대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확보 과정에서 많은 오류를 겪었다. 국민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홍보활동이나 의견 수렴 절차는 거의 없었다. 기술적인 관점만을 고려해 시작된 방폐장 부지 확보사업은 예상치 못한 지역주민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잘못 끼워진 첫 단추로 인해 안면도 사태와 부안 사태 등 장장 2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정부와 지역 간, 그리고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 간 갈등과 반목, 소모적 논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소요됐다.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인 것은 정부가 부지 선정 절차 및 일정을 정식적으로 공고하고, 그 절차에 따라 지역이 자발적으로 유치 신청을 한 뒤 주민투표라는 방식을 통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면서부터였다.

경북도 한 고위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원전 문제에 대해 지방정부와 전혀 협의를 거치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 입지 선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지방이 폐기물 처리장이냐'는 주민 여론이 많다. '원전의 절반이 몰려 있는 경북에 정부가 도대체 해 준 게 뭐냐'는 반발도 적지 않아 중앙정부가 지역 정서를 정말 잘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울진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 혼자의 힘이나 의지만으로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절대 만들 수 없다"며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방안이 선행되어야 한다. '원전에 속았다'는 지역 정서가 강하다"고 주장했다. 울진 강병서 기자 kbs@msnet.co.kr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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