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훈청장의 가을앓이

입력 2014-10-22 08:00:00

가을이다! 가을이 온 것이다. 유학산 자락 낙동강 어귀에도 가을은 완연하다. 얼마 전 이곳에서는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과 '낙동강전승기념행사'가 열렸다.

나는 거기서 그 유명한 '다부동 전투'를 치르다가 열아홉 나이에 전사한 어린 신랑의 이름이 새겨진 충혼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훔치는 한 전몰미망인을 만났다. 기념행사에 앞서 열린 '다부동 구국용사 추모제'에 대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오신 분이었다. 그분의 눈물보다도 어린 신랑 이름 석 자 밑에 간신히 올려놓은 두 번 접은 북어포와 소주병이 더 애처로웠다. 그 소주는 추모제에 참석한 어느 이름 모를 생존 참전용사가 음복이라며 대신 마셨다.

그날 오후 나는 칠곡 석적의 낙동강 뚝방길을 걸어서 전승기념 전투재연 행사에도 참가했다. 이곳에서 현대화된 장비와 화력으로 위용을 자랑하는 우리 군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달랑 소총 한 자루 거머쥐고 백병전을 펼쳤을 우리 참전용사들의 애국심과 열정이 없었다면 나는 그날 그 자리에 온전히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났다. 노구를 이끌고 강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백발을 쓰다듬으며 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을 보니 더 그랬다. 나는 전투상황 재연을 위해 터지는 포 소리와 실제 기동한 헬기의 굉음에 맞춰 입을 크게 벌리며 심호흡을 여러 번 했고 하늘을 쳐다보며 연신 눈을 깜박여야 했다. 아아! 대한민국이여!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 이 나라 대한민국은 발전, 그것도 '눈부신' 발전을 했다고 세계 곳곳에 자랑을 하고, 일반 국민을 위한 복지예산 증액으로 인해 내년도 예산안의 별칭이 '슈퍼 예산'이라고 하는데 내가 만난 참전용사들은 살이 빠져 허리띠가 한주먹이나 더 돌아가는 때 묻은 낡은 바지를 입은 채 행사에 오고, 전쟁 통에 혼자되서 60년을 홀로 지낸 미망인은 여전히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남편 추모제에 온다. 단언컨대, 대한민국이 정말 품격 있는 나라,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려면 이들부터 좀 챙겨야 한다. 안 보인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할 '패기(?)' 있는 대표단도 없을 뿐더러 도와주겠다고 굶기를 자처하는 이들 또한 하나도 없는데 참전용사와 미망인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이제 위로는 위정자로부터 아래로는 보훈의 당사자까지 보훈행정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때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사회복지의 역사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모두 전쟁으로 인한 인적 피해의 구제에서 시작되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 체제로 발전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처음에는 '원호'라고 해서 요보호 집단 또는 공적 부조라는 관점에서였고 그나마 일반 국민의 복지가 전무한 상태에서는 국가의 손길을 사뭇 고맙게 생각할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온 국민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를 하나의 권리로 인식하게 된 지금 우리의 보훈행정은 일반적인 복지의 개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국가는 빈곤과 욕구에 대한 대응 이상의 중요성을 부여해야 하고 보훈 당사자는 재원을 부담하는 국민과 다른 보훈 당사자와의 관계를 고려한 정부의 정책에 협조할 아량을 갖춰야 한다. 이렇게 보훈에 대한 기존의 낡은 관념을 버리고 복지 이상의 성격을 국가, 보훈대상자, 국민 모두가 인정하고, 이러한 정신이 사회 전체에 확산될 때에만 온전한 국민통합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가 만난 참전용사와 미망인이 저승에 가서라도 옛 전우와 어린 신랑에게 '당신 덕분에 잘 살다 왔어!'라고 실없는 넋두리라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보니 따사로운 가을 바람에 대곡동 청사의 태극기가 오늘따라 더 힘차게 나부낀다.

오진영/대구지방보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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