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앓는 딸·아들 자폐증상까지 모두 내 잘못"
김인수(가명'52) 씨는 자신을 항상 죄인이라고 말한다. 심장병이 있는 딸과 자궁경부암으로 몸져누워 있는 부인, 자폐증상을 보이는 아들까지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 말한다. 김 씨의 몸도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만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돌본다. 사업 실패만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 고통을 치르고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나름 착하게 살았었는데 자꾸 나쁜 일만 겹치니깐 하늘이 원망스러웠죠. 나한테 생기는 나쁜 일이 가족들한테까지 영향을 주니깐 미안한 마음 뿐이예요."
◆사업실패에 이은 딸의 심장병
김 씨 가족은 한때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작은 건설업체와 가전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 씨 덕에 가족들은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남을 돕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돈을 버는 만큼 사회에 환원한다는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정을 만들기도 하고 길이 험한 시골에 도로포장을 해주기도 했다. 선행에 대한 공로로 표창장까지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족의 행복은 순식간에 꼬꾸라졌다. IMF로 인해 김 씨의 사업은 위기를 맞았고 이겨내기 위해 만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결국 13억원의 부채를 안고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집에는 빚쟁이들이 몰려왔고 가족들은 매일 불안함에 떨어야 했다. "무너지려니 순식간이더군요. 갑자기 바뀐 환경에 빚 독촉까지, 저도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아내와 어린 아이들은 오죽했겠어요."
재기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진 것도 잠시, 가족의 불행은 점점 불어났다. 사업 실패의 고통을 온 가족이 함께 맞고 있는 와중에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병원에서는 선천성 심장병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곧바로 인공 심장박동기를 삽입하는 큰 수술까지 받았다.
◆연이은 가족의 불행
딸의 심장병을 알게 된 뒤부터 김 씨는 고민에 빠졌다. 완치가 어려운 딸의 병은 계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치료비도 만만치 않았다. 김 씨는 채무를 지고 있어 딸에게 도움이 될 수 없었고, 결국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했다. "돈을 벌어도 빚 갚는데 다 써야 하는 상황이라 지인들에게 손을 내밀기도 했어요. 내가 아내와 이혼하면 딸이 의료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런 결심을 하게 됐어요."
딸은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심장수술을 받았고, 한 차례 뇌수술까지도 받았다. 아내는 항상 병원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김 씨의 사업 부도에 딸의 간호까지 겹치면서 자신의 몸을 돌볼 새도 없었던 아내에게는 자궁경부암 3기라는 절망적인 진단이 내려졌다.
가족들은 연이은 불행 앞에 절망감에 빠졌다. 김 씨는 딸과 아내의 병간호를 하느라 심신이 지쳐갔다. 그러다 해서는 안 될 선택까지 하게 됐다. 생명을 끊으려고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지만 나뭇가지에 걸려 갈비뼈와 다리, 허리 골절 등으로 몸만 망가진 것. "아픈 아이와 자식을 두고 그런 선택을 했을 땐 제정신이 아니었죠. 나쁜 짓도 안 하고 살았는데 하늘이 내게 왜 이런 벌을 주는지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했어요."
곧이어 가족의 참담한 상황 때문인지 막내아들까지 벽만 보고 학교도 가지 않으려는 등 자폐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김 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 때문에 아들마저 잘못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들과 대화하고 등산을 가는 등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장의 슬픔
김 씨의 몸이 회복되고 아들도 일상생활에 문제없어질 때쯤 가족에겐 더 큰 시련이 닥쳤다. 낮에는 건설 일용직,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던 김 씨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가족의 치료비와 생활비가 필요했던 아빠는 술에 취한 손님들의 주머니를 털기 시작했다. 연이은 절도는 덜미가 잡혔고 김 씨는 결국 교도소까지 가게 됐다. "나를 위해서였다면 절대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로지 가족들이 밥 먹고 치료받을 수 있는 돈을 마련하려고 그런 짓까지 저지른거죠. 하지만 죄는 죄기 때문에 지금도 너무 후회가 됩니다."
김 씨를 구명하기 위해 아내와 딸은 아픈 몸을 이끌고 법정까지 찾아와 김 씨를 선처해달라 눈물로 호소했지만 결국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 와중에 아내는 암이 척추로까지 전이됐고, 마지막 연명치료를 하는 호스피스 병동으로까지 옮겨졌다. 교도소에서 가족 걱정뿐이었던 김 씨는 아내 때문에 마음을 쓰다 쓰러졌고,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교도소에서 나온 그 앞에는 해결해야 할 짐들이 한가득이었다. 아픈 아내와 딸을 돌보는 것은 물론 자신의 수감 기간 중 방값을 내지 못한 집의 밀린 월세까지 내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딸의 인공심장박동기의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아 김 씨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이제는 일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처지에 아내의 병원에 거의 붙어 있어야 해서 더 힘들죠. 아내는 이제 더이상 치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딸애도 20대 젊은 나이에 심장 때문에 힘든 일도 못하는데 내 몸 돌보는 건 사치예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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