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말(言)의 씨앗

입력 2014-10-20 08:00:00

인체 중 가장 감미로운 사람의 혀 밑에는 뱉어낼수록 더 많이 고이는 말들이 숨어 있다. 말에도 씨가 있어 라고 하는데 말의 씨앗은 상대방의 심중으로 명중, 더러는 맹독이 되고 더러는 명약이 된다. 말씨 하나로도 그 사람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교육대학교는 우리 집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해서 나는 교정을 자주 이용한다. 앞서가는 청년들 셋이 맛나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 들려오는 이야기의 태반이 욕설이다. 내 귀가 저건 욕설이라기보다 말 속의 굿거리장단이나 세마치장단 같은 거라 우겨 듣는데 나처럼 학교 지름길을 이용하시던 백발 성성하신 할아버지가 청년들을 불러 세운다. '학생들, 선생님 될 학생들 맞나요?'하니 모두 '예' 하고 대답한다. '선생님이 될 학생들이 웬 욕을 그렇게 많이 하지? 좋은 말 다 놔두고, 좋은 선생님들이 되어야지 좋은 선생님이'라고 하시니 민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죄송합니다' 하고 깍듯이 고개를 숙인다. 할아버지 진짜 멋있다고 생각하며 할아버지 뒤를 따라간다. 학교를 빠져나와 골목길을 가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간다. 할아버지가 또 그 아이들을 불러 세우신다. '예들아! 그 예쁜 입으로 어찌 그런 상스러운 말을 하노, 죄 없는 부모와 선생님들 욕 먹인다. 그 예쁜 입으로 예쁜 말을 해야지, 하시고는 곁골목으로 가신다. 할아버지의 타이름 속에는 사랑과 위엄이 가득 느껴졌다. 한 아이가 할아버지 가시는 골목길을 향해 별꼴이라며 소리치니 아이들이 큰 소리로 웃어댄다. 가을볕에 반짝이는 할아버지 백발이 산비탈에서 고추바람을 재우고 있는 억새꽃 같았다. 내가 가만히 서서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으니 반항하듯 더 거친 말로 재잘거린다. 잠시 어딘가에 반항하고 싶은 가여운 아이들이라 믿는다. 머지않은 날에 그 청년들은 존경받는 훌륭한 선생님이 될 것이고, 그 여자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말로 행복한 가정을 가꾸어가는 착한 아내가 되고 장한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지혜의 왕 솔로몬의 잠언이 생각난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라,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는다' 했다. 할아버지 백발이 어떤 가을꽃보다 멋있는 날, 아이들이 제일 무섭다고 하는 이 세상 어쩌면 좋을까 싶다. 불량청소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저런 것쯤이야 하고 넘어가 버린 어른들의 관용과 잘못된 본보기가 무서운 아이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른인 내 혀 밑에는 어떤 말의 씨앗이 저장되어 있고 내보냈는지를 반성하면서 젊은 자의 영화와 늙은 자의 영화가 잘 어우러지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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