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화려한 건물 속에 파묻혀 초라한 구시대 유물로 취급받던 도심 속 한옥이 새 옷으로 단장하며 예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다. 외형은 그대로 간직하면서 내부와 주변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한옥은 젊은이들을 불러모으는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로, 또 고전미를 뿜어내는 병원 등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생활 속에 스며든 한옥
대구 중구 대봉동의 한옥 카페 모가(moga'204㎡)는 1959년에 지은 한옥을 정유경(43) 씨가 사들여 2010년 4월 카페로 탈바꿈시켰다. 정 씨는 처음엔 요리 스튜디오로 사용하려 했지만, 한옥에서 차 한잔 마시는 것도 좋겠다는 지인들의 권유에 따라 카페의 옷을 입혔다.
이 한옥은 구입할 때만 해도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할 만큼 보존 상태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정 씨는 전통한옥의 멋을 살리고자 개조로 방향을 잡았고, 원형을 최대한 살려 아담한 마당이 있는 카페로 재탄생시켰다. 이곳은 예스러움에 발길이 끌린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제는 김광석길과 방천시장을 둘러본 관광객들이 들르는 필수 코스처럼 됐다. 모가가 한옥 카페로 인기를 얻자 중구 대봉동과 계산동 등지에 4, 5곳의 한옥 카페가 생겨났다.
병원으로 변신한 한옥도 있다. 삼덕동 '임재양외과'는 병원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한옥을 리모델링해 특이하면서도 운치 있는 의료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임재양 원장은 환자가 병원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의사가 환자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방법을 찾다가 한옥병원을 짓게 됐다. 2012년 'ㄷ' 자형 한옥으로 재탄생한 이곳 대청마루는 진료대기실로 사용되고 있다. 한옥과 일본식 가옥이 어우러진 풍경은 병원보다 관광명소 같은 느낌이 들어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많다.
대봉동의 '오원석 황금동물병원'은 전통한옥 양식대로 2011년 새로 지었다. 서까래 밑에 수술 장비 등 의료기구들이 놓여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이곳은 노령동물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힐링센터'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 한옥과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룬다.
◆관광과 접목된 한옥, 게스트하우스
한옥은 침대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온돌방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안겨주기도 한다. 한옥 게스트하우스는 아파트라는 삶의 공간에서 벗어나 예스러움과 만나는 하룻밤을 선사한다.
대구에 처음 등장한 한옥 게스트하우스는 '구암서원'. 1996년 달성 서씨의 문중 서원인 구암서원이 북구 산격동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은 16년 동안이나 폐가로 방치돼 있었다. 중구청은 근대골목 투어와 연계한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기에 적당한 장소로 이곳을 낙점했고 달성 서씨 종친회로부터 건물 사용 동의를 얻었다.
2012년 문을 연 이곳은 머무르는 공간이면서도 체험 공간이라는 방향을 잡아 한옥 숙박과 함께 민속놀이, 활쏘기 등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독특한 발상이 알려지면서 지난해에는 한국관광공사의 우수한옥체험숙박업체로 뽑혔다.
대구종로초등학교 옆 골목에는 재즈 선율이 흐르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손미숙 씨는 1950년대에 지어진 한옥과 100년 된 일본식 가옥을 7개월간 수리해 지난해 8월 게스트하우스 '판'의 간판을 달고 문을 열었다. 손 씨가 재즈에 관심이 많아 이곳에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 재즈 공연이 펼쳐진다. 한옥에서 듣는 재즈는 숙박객에게 동서양의 만남을 안겨준다.
진골목에 위치한 '공감 한옥 게스트하우스'는 코오롱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의 생가 터에 1950년대에 지은 한옥을 개보수했다. 77㎡ 규모의 'ㄱ' 자 형태의 전통한옥은 안방과 대문채 등 4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중구 북내동의 '더스타일'은 야외 수영장이 있는 이색적인 한옥 게스트하우스다. 1960년대에 지은 한옥을 리모델링한 연면적 330여㎡ 규모로 온돌방, 침대방 등 7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앞마당에는 반태극 문양의 야외수영장을 만들어 여름에는 수영장, 겨울에는 노천탕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심 한옥은 리모델링 중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인구가 빠져나간 대구 중구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옛 한옥도 많았는데 최근에는 이 한옥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국가한옥센터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대구의 한옥(2000년대 이전 건립) 숫자는 452채. 다음이 울산(432채), 대전(188채), 부산(126채), 서울(86채) 등으로 7대 도시 중 가장 많다.
대구의 한옥밀집지역은 345개 지구. 이 중 절반이 넘는 196곳이 중구에 있다. 중구 내의 한옥 건물은 총 3천562개로 전체 건축물(1만8천261채) 중 19.5%를 차지한다.
중구청은 4, 5년 전 한옥을 중구의 자산으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으로 활용 방안을 고민했고,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구청은 북'서성로 일대의 근대건축물(1960년대 이전)을 원형에 가깝게 개선'보존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목표로, 건물 외관 공사비의 80% 내에서 최대 4천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현재 북'서성로 일대 390채가량의 근대건축물 중 8채가 사업에 참여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골목투어가 활성화되면서 관광객들이 유입되자 한옥을 사들여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많다. 곽병원 뒤쪽에 있는 99칸짜리 한옥도 흉물로 변할 위기에 처해 구청 차원에서 활용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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