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상록은 결빙을 인정하지 않는다/ 말갈기 휘날리는 비바람도/ 지상을 독식하며 덤비는 눈발도/ 숙명으로 주어진 천근성이라 하여/ 결코 얕은 뿌리를 흔들지는 못하리라/ 마지막 생의 수액까지 내어준/ 고사목이 된 우듬지에 눈꽃이어도/ 이어지는 생명은 세세만년이리니….' 어느 시인은 명산준령에 뿌리내린 구상나무의 자태를 이렇게 노래했다. 한 여류시인은 성탄절 아침 함박눈 내리는 덕유산 정상에 올랐다가 오랜 풍상에 고사목이 된 구상나무와 마주하고는 '줄기 끝에 빛나는 광배(光背)'를 보았다고 고백한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큰키나무(상록 침엽교목)인 구상나무는 학명에 'koreana'란 단어가 들어 있다. 한라산'지리산'무등산'덕유산 고지대에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1900년대 초 외국의 식물학자인 윌슨이 한라산에서 채집한 이 새로운 나무에 '구상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로 제주도 사투리인 '쿠살낭'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쿠살'은 성게를 '낭'은 나무를 가리키는데, 구상나무 잎이 흡사 성게 가시처럼 생긴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구상나무는 잎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특징이고,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사뭇 고상하다.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수와 공원수로 인기가 높은데, 특히 성탄절 때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비싸게 팔리는 나무로, 유럽에서는 'korean fir'(한국 전나무)로 통한다.
구상나무가 기후변화 때문에 멸종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도 그렇지만, 한라산 영실코스를 오르다 보면 구상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고사목이 된 구상나무는 그렇게 살아서 백 년 또 죽어서 백 년이다. 그런데 이 구상나무의 잃어버린 '생물주권'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이 국내 구상나무 '야생종'과 해외에서 들여와 원예용으로 판매하는 '개량종'의 유전자를 비교하는 연구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해외의 인기 수종인 구상나무의 조상이 한국의 야생종임이 입증되면, 세계적인 크리스마스트리용 나무의 원조국이 우리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것도 한류(韓流)라면 한류인데, 로열티까지 받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반출된 지 벌써 100년도 넘은 옛일이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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