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명량, 이순신의 아들' 배우 권 율

입력 2014-10-16 07:20:47

2007년 데뷔 '중고 신인'…"연기'삶이 점점 즐거워져요"

'배우' 권율(32)을 만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니었다. 영화 '명량'이 흥행가도를 달리던 8월,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땀은 났지만 권율은 열정적으로 '명량'과 자신이 맡았던 이회 역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바람이 탁자의 종이들을 휘날리게 하는 날씨였다. 최근 끝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진행된 부산 해운대 바닷가 인근. 날은 여전히 더웠지만 바람은 선선했다.

권율은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조금은 더 여유로웠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기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하긴 제23회 부일영화상 사회를 맡았고, 그가 이순신 장군의 아들 이회 역으로 출연한 '명량'이 이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으니 기분이 좋아 보일 수밖에. 이회가 조연상을 따내지 못했어도 그는 즐거워 보였다.

권율은 또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영화 '명량'의 관객과의 대화(GV), 부산영화제 부대행사인 시네마투게더(영화를 보고 난 뒤 관객들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역할로 영화제에 참여했다. 이런 순간이 또 올까 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과거 군 복무를 마치고 큰 배낭을 메고 왔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정식 초청에다가 할 일도 많았으니 특별한 순간임에 틀림없다.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공식 초청이라 말 그대로 영광입니다"라고 미소 짓는 권율. "'명량' 개봉 후 1주 정도만 무대 인사를 다니면 역할이 끝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부산에 와서 관객의 피드백을 받으니 좋았어요. 좀 더 재미있는 영화제가 됐다고나 할까요?"(웃음)

권율은 부산에서도 '명량'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난 7월 30일 개봉했으니 벌써 두 달이 지났건만 많은 이들이 묻는다. 지겨울 법도 하지 않으냐고 하니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은 '왜?'라고 반문하는 듯했다. 비록 이순신 장군은 아니었어도 많은 관객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고, 의미 있는 작업을 했기 때문이리라.

최근에는 김한민 감독이 만드는 '명량'의 다큐멘터리에 권율이 출연을 확정한 사실이 알려졌다. 대승한 명량해전에 앞서,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 재건을 위해 어떤 여정이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내용을 담을 다큐멘터리다. 권율은 다시 한 번 이순신 장군의 과거를 좇는다. 김한민 감독도 메가폰을 쥐는 것만이 아니라 권율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선다.

권율은 김 감독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며 과거를 떠올려볼 예정이다.

권율은 "의미가 깊은 작업이라고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다. 관객에게든, 이순신 장군님에게든 또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제게 처음으로 '함께하자'고 제안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이순신 장군님의 아들과 함께, 아버지와 아들의 느낌으로 우리 한번 걸어보자'는 식으로 말씀하셨죠. 다른 의도라기보다 한 번 더 이순신 장군님을 생각해보는, 또 다른 진심의 작업이라 무조건 참여하겠다고 했어요. 장군님이 어떻게 수군을 재건했는지 기록에 나와 있긴 하지만,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잘 모르잖아요. 고난의 행군이겠지만 의미 있을 것 같아요. 몸이 힘들고 지칠수록 장군님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직접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하하."

권율은 따지고 보면 '중고 신인'이다. 지난 2007년 문채원, 이민호와 함께 SBS 시트콤 '달려라 고등어'로 데뷔했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자양분이 됐다.

"스스로 여유와 믿음을 준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더 진지하게 만들어줬죠. 그때 잘 됐으면요? 아마 이순신 장군님의 아들 역할이 안 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웃음) 다른 길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다른 배우들처럼, 연기를 시작한 마음으로 중심을 잡고 가려고 노력한 건 변함 없었을 것 같아요."

'명량'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는 권율. 특히 선배 최민식과 많은 신을 함께 나눴다.

"사실 현장에서 최민식 선배를 비롯한 모든 선배의 포스는 굉장했어요. 그 기운을 받아치려고 했다면 아마 전 게임도 안 돼 나가떨어졌겠죠. 다만 저는 아버지 이순신만을 걱정하는 이회의 마음이라는 진심만 가져가려고 했어요. 물론 최민식 선배를 바라보는 후배 권율의 마음도 있었고요. 선배가 어떻게 고민하고 탐구하는지를 진심으로 함께하고 싶었던 것뿐이죠."

그는 어떤 선배인지 물었다. "전 아직도 후배들에게 배우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20대 친구들 나이 때 난 왜 진지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솔직히 후배들을 볼 때 그들이 후배가 아니라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전 이제 연기라는 출발선에 서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명량'을 통해 달려가려고 고개를 든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권율은 연기와 삶이 점점 즐거워지고 있다고 좋아했다. 아직 갈 길이 먼 그이지만 다급하지 않다. 과거와는 다르다. 그는 '명량'이 잘 됐어도, 또 김한민 감독의 부름을 받았어도 흥분하지 않았다. 적당히 좋아하고,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내년 부산에도 좋은 작품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바랄 뿐이다.

"사실 '명량'이 잘 돼 감독님들이나 선후배 배우분들의 응원도 많이 받아 즐겁긴 하죠. 계속 연기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요. 다음 작품은 일단 김한민 감독님과 함께하는 게 먼저고요. 이후에 좀 더 도전할 수 있고, 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을 공들여 찾고 있답니다. 이회라는 캐릭터를 만난 것처럼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겠죠? 내년 부산은 어떻게 오면 좋겠느냐고요? 음, 욕심이 조금 있긴 해요. 내년에는 사회자나 시상자 말고, 수상자로 왔으면 좋겠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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