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봉오리 같은 10대에 조혼…성당서 친척'마을주민 모시고 엄숙한 결혼식
◆인생의 한철
순례를 떠난 지 3년여가 되어가는 시간,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오지 산마을을 지나고 있다. 1년 내내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으니 동굴 밖에 세워둔 나무꾼의 도낏자루처럼 세월이 가고 옴에 실감이 안 난다. 그러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많이 변해 있으려나. 산하도, 가까운 이웃들도.
오래된 작은 형광등 불빛 하나 의지하고 있는 어둠컴컴한 부엌 안에서는 40, 50대를 넘긴 남자들이 고개를 맞대고 동그랗게 앉아 '~랄라'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깔리양 전통 노래를 부른다. 40℃가 넘는 그들의 전통 위스키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운율이 넘어가는데, 우리네 아리랑의 가락처럼 둔부가 부드러운 산을 넘어가는 듯하다. 30대들은 술에 취해 망연히 바라본다. 그들은 이 노래를 모른다고 한다.
아잔(목사)도 같이 끼어 있는 정겨운 모습에서 언뜻언뜻 인류의 기원이라는 침팬지의 모습도 잠깐 오버랩되는 듯하다. 눈부신 문명의 발전이 인류의 삶을 얼마나 바꿔 놓았으며,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은 또 얼마나 천지개벽 했을까. 한국은 지금 초여름으로 나날이 그 열도를 더해 갈 텐데, 부엌 안 한쪽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그 불빛 따라 사람들 얼굴의 명암이 묘하게 흘러간다. 전번에 술에 취해 권총을 보여주던 36세 사내는 오바또에서 일하는 23세의 깔리양 아낙과 아기를 하나 키우며 살고 있는데, 매싸리앙에서 경찰관을 한다. 초저녁부터 홍통과 콜라를 섞어 모닥불 가에서 혼자 홀짝거린다. 아버지는 베트남인이고, 엄마는 태국인이며, 부인은 깔리양이니 3국이 섞여 산다고 한다. 동남아 쪽 나라들은 인종이 급격하게 섞이고 있다.
모두가 꽃봉오리다.
막 세수하고 나온 15,6세 소녀의 모습은 한 송이 꽃봉오리다. 사람이 저렇게 꽃보다 예쁠 수도 있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파고들어/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정현종
쿵더쿵쿵더쿵 뒤꼍에서 디딜방아 소리가 난다. 돌아가 보니 깔리양 아낙 혼자 공이에 보리를 넣고 왔다갔다하며 찧는다. 몽족마을에서는 가끔 엄청나게 큰 맷돌을 두 사람이 돌리는 것을 보았는데. 하나 둘 모이던 사람들이 6시가 넘어가자 마당과 고샅길까지 가득하다. 신랑의 학교 동료들이 많이 와 있고 평소에 인덕을 많이 쌓아서인지 몽족 마을 청년들도 한 무더기 와 앉아 있어 나도 그 옆에 앉는다. 벌써 가라오케의 반주에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우리의 시골 마을 어디쯤 와 있는 듯하다.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2층 집에도 사람들로 붐빈다. 아래에는 돼지막이 있고 옆으로 잡동사니들을 쌓아 두었다. 부엌으로 꾸민 입구 대발 위에는 살강이 설치되어 있고 아낙들이 모여 수다를 떨며 설거지를 하느라 분주하다. 입구를 막아놓은 골목 안에는 밤새 사람들 소리, 노랫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랄라' 소리도 자정을 넘어간다.
◆성당에서 올리는 땡간(결혼식)
오전 7시쯤 일어나 결혼식이 열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에 간다. 고샅길 따라 양쪽으로 서 있는 집 마당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닥불 옆에 서 있다. 조그만 산마을의 경사인데도 더러 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전부 엎드리면 코 닿을 것 같이 다닥다닥 붙어 평생을 함께 살아왔을 텐데.
이 마을에도 선생이 두엇 있다. 몽족, 카렌족, 타이야이, 러와족, 라후족 등 수많은 종족이 이 기슭 저 능선에 붙어 각기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는 이 오지에서도 선생이 되면 가장 출세한 축에 속하는 듯하다. 마당에는 위풍당당하게 차가 서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인근 도시로 나가 선생을 한다.
목조 건물로 지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왼쪽에는 여자, 오른쪽에는 남자들이 마룻바닥에 앉아 있다. 하얀 옷을 입은 신부님이 엄숙한 표정으로 식을 진행한다. 성혼 서약서를 읽고 두 사람에게 묻는다. 명징한 소리로 대답하는 신랑과 약간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여리게 대답하는 17세의 신부, 그래도 신랑이 학교 선생이라 그런지 어린 신부의 손에 소박한 반지와 목걸이를 채워준다. 흰 드레스를 입은 어린 소녀들이 나와 축가를 부른다. 깔리양 족의 전통은 결혼 전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는데, 결혼을 하면 가로로 밤색이나 파란색 등의 짙은 줄무늬가 있는 옷을 입는다. 신부의 옷도 어제와 다르다. 20, 30여 분 식이 진행되고 사람들이 일어서더니 두 줄로 신부님 앞에 선다. 세기의 명작 '최후의 만찬'. 그 그림 속에서 제자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시던 예수님처럼, 신부님이 밀가루로 만든 동그란 성체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저마다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받아 혀 위에 얹는다.
친척들과 가까운 마을사람들은 서로 웃으며 기념 촬영을 한다. 사진사가 온다거나 액자 속 사진 같은 것은 없지만 그들의 함박웃음은 이 오지 산골에 피는 들꽃처럼 순진무구하다. 성당 입구에서 사진을 찍은 신랑의 입에 어느 짓궂은 친척이 100바트(4천원)를 물리자 신부가 입으로 받는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웃는다. 먼 조선시대나 그전쯤, 우리의 옛시절에도 조혼(早婚)이 성해 13, 14세쯤의 신부도 흔했을 것이다.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 꽃가마 타고 가네 아홉살 새색시가 시집을 간다네"란 노래도 있지 않은가.
윤재훈(오지여행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