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얘기 진짜 같네" 연속극 빠져든 '직딩'

입력 2014-10-16 07:45:01

킬러 콘텐츠 떠오른 '직장인'

직장인 드라마의 원조격인 TV 손자병법
직장인 드라마의 원조격인 TV 손자병법

직장인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고민을 나누며, 스트레스도 풀어주는 '직장인 이야기'가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뜨고 있다. TV 드라마 및 예능프로그램, 영화, 웹툰 등 가리지 않는다. 주부들을 끌어들이는 TV 연속극처럼, 10대들을 끌어들이는 아이돌 가요처럼, 직장인 이야기도 수많은 직장인을 끌어들일 수 있다. 또 점점 경쟁이 심해지는 직장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처세술'을 전수해주고, 실제 발생하는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소리를 사회에 대신 외쳐 주기도 한다. 실용적인데다 의리도 있다. 이 정도면 모든 대중매체가 주목할 만한 '킬러 콘텐츠'다.

◆직장인 드라마 '직드' 대세

그동안 수많은 TV 드라마가 직장인 이야기를 다뤘다. 하지만 사장 아들이자 후계자인 실장님과 젊고 어여쁜 여직원의 신데렐라 이야기이거나, 직장에서 어긋난 사랑을 펼치는 치정극이 대부분이었다. 직장은 말 그대로 촬영 세트일 뿐이었다.

시청자도 그렇게 느꼈다. 2012년 설문조사업체 엠브레인이지서베이가 만 20세 이상 전국 남녀 직장인 561명에게 물었더니 33.7%가 '드라마와 현실의 모든 것이 차이가 난다'고 답했다. 드라마가 현실보다 부러운 이유로는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늘 사장 딸이나 아들이어서'(47.5%), '신입사원 때부터 능력을 인정받아서'(23.8%), '야근도 안 하고 늘 칼퇴근해서'(19.8%) 등의 대답이 이어졌다.

최근 사장 아들과의 로맨스도 없고, 신입사원 때 처절하게 혼이 나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장인들이 등장하는 '현실적인' 드라마가 나타났다. 17일부터 방송되는 tvN 금토드라마 '미생'이다. 이 드라마는 윤태호 작가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재한 웹툰 '미생'이 원작이다. 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는 청년 장그래가 종합상사에서 초보 직장인으로 생활하며 겪는 이야기다. 인생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바둑의 특성을 직장인의 삶에 절묘하게 빗대어 찬사를 얻었다. 또 직장 구성원들끼리 맺는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관계를 현실적으로 그려내 큰 공감을 불렀다. 제목인 '미생'(未生)은 바둑에서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말(馬)로 상대에게 공격을 받을 여지가 있는 말'을 가리킨다. 즉 주인공이 아직 미생 신세인 신입사원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취업준비생들의 관심도 모았다.

◆직장인 공감이 인기 비결

미생보다 앞서 인기를 얻은 직장인 드라마는 지난해 방영된 KBS '직장의 신'이다. 배우 김혜수가 주인공 미스김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드라마는 직장인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한편, 자발적 비정규직을 선언한 만능 직장인 미스김을 통해 현실 속 직장인들에게 다양한 처세술을 전수했고, 주변 인물들을 통해 고용 관련 문제도 함께 제기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뤘다. 계약 연장을 위해 임신 사실을 숨기는 예비 엄마 직원과 학자금 대출 빚에 허덕이는 햇병아리 계약직 직원의 에피소드가 씁쓸한 웃음을 짓거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2007년 첫 방송된 tvN '막돼먹은 영애씨'는 최근 13번째 시즌을 마무리한 국내 최장수 드라마다. 노처녀 직장인 이영애(김현숙 분)를 중심으로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렸다. 막돼먹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고군분투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공감을 얻으며 드라마를 7년이나 이끌었다.

직장인 드라마의 원조는 어떤 작품일까. 거슬러 올라가면 KBS 'TV 손자병법'(1987~1993)이 나온다. 미생처럼 종합상사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삶을 다뤘다. 유비 역에 서인석, 장비 역에 김희라, 이장수 과장 역에 오현경 등 지금은 중견 내지는 원로가 된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다.

예능프로그램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최근 KBS 개그콘서트 무대에 직장인 복장을 한 개그맨 4명이 오르고 있다. 비틀즈의 명곡 '렛 잇 비'의 멜로디에 맞춰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을 노래한다. "직장인은 종합병원, 월요병'상사병'술병"이라거나 "최고의 스펙은 재벌 호적"이라며, 또 "월급 로그인하자마자 로그아웃"이라는 등 웃기지만 슬픈 '웃픈' 개그를 선보인다. 마침 개그콘서트는 직장인들이 월요병을 앓기 시작하는 일요일 저녁에 방송된다.

지난달부터 방송 중인 tvN '오늘부터 출근'은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연예인들이 실제 직장인처럼 5일간 출퇴근하며 펼치는 직장 체험 예능이다. 최근 지오디 멤버 박준형은 자신보다 어린 팀장에게 꾸중을 들었고, 아이돌 쥬얼리S 멤버 김예원은 짧은 치마로 복장 지적을 당했으며, 가수 은지원과 로이킴은 하루 종일 택배 포장을 하며 진을 뺐다.

◆노동 문제에는 대신 목소리

다음 달 11일 개봉하는 영화 '카트'는 국내 최초로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상업영화다. 온갖 잔소리와 불합리한 처우에도 꿋꿋이 웃으며 일하던 대형마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어느 날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지를 받는다. 싱글맘, 20여 년간 청소부로 일한 아줌마, 88만원 세대로 사는 20대 등 노조의 '노' 자도 모르던 이들이 용기를 내어 서로 힘을 합친다.

고용불안을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 여성들은 육아와 살림도 맡아야 해 더욱 고단하다. 특히 임금과 처우를 차별받는 경우가 많고, 상당수가 격한 감정 노동과 성희롱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이 영화는 그동안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그러면서 염정아, 김영애, 김강우, 인기 아이돌 엑소의 멤버 '디오'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영화의 파급력을 높이는 전략을 취했다.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 '도가니'가 흥행하며 일명 '도가니법' 개정을 이끌어낸 것처럼, 이 영화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12월부터 연재된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도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대형마트 중간 관리자 이수인이 비정규직 직원을 해고하라는 회사의 지시에 맞서 노조를 조직해 맞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복직 투쟁을 하다가 용역들에게 폭행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이나, 이수인을 돕는 노동상담소장 구고신이 내뱉는 촌철살인의 조언 등이 제목 그대로 송곳처럼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뚫는다.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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