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미래 공공도서관에서 찾다] ②'도서관 키즈'의 나라 미국

입력 2014-10-15 07:31:14

공부만 하는 독서실 "NO" 삶의 질 업그레이드 "OK"

미국은 '도서관 키즈'(Kids)의 나라다.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빌 게이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등 미국 대표 위인들의 유년 시절에는 항상 도서관이 있었다. 이들이 어릴 때, 도서관을 드나들었던 경험은 현재 미국을 이끄는 문화적 저력이 되고 있다. 미국도서관협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의 94%는 '도서관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말했다. 본지 기획취재팀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마을에 거주하는 한국인 가정을 만나 미국의 성장 동력이 된 도서관 문화를 살펴보고 왔다.

◆삶의 중심에 놓인 도서관

지난달 13일 토요일 오전 9시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로어몰랜드 마을. 주말 아침부터 이창호(44) 씨 가족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은 이 씨 가족의 주간행사인 'Library day'(도서관 가는 날)다. 대구에서 살다 15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두 아들(고교생'중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씨 가족은 한 달에 2, 3번은 온 가족이 다 함께 도서관으로 향한다. 둘째 지섭(12) 군도 아침운동을 다녀와 도서관 가는 길에 동참했다.

이 씨 가족이 이날 찾은 도서관은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헌팅턴 밸리'(Huntington Valley) 도서관이다. 1만3천 명의 주민이 이용하는 이곳 도서관은 학교, 소방서, 경찰서, 체육관 등 주요 공공기관들로 둘러싸여 있다. 부인 김경희(43) 씨는 "마을마다 도서관이 학교 등 주요 관공서를 끼고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이용하기가 편리하다"고 자랑했다.

660㎡(200평 정도) 남짓한 도서관에 들어서자 은은한 커피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도서관 한구석에는 모든 이용자가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커피머신과 안락한 소파가 놓여 있었다. 부부가 즐겨 찾는 자리도 이곳 소파다. 아이들은 창가 쪽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 도서관처럼 1인용 칸막이 책상이나 열람실은 보이지 않았다. 이 씨는 "한국 도서관은 답답한 이미지가 떠올라 가기 싫어진다"며 "미국 도서관 분위기는 카페처럼 편안하다. 도서관이 먼저 책 읽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니까 더 자주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서관이 키운 사람들

이 씨 가족은 도서관에서 각자 평소에 보고 싶었던 책을 보거나, 신문이나 잡지를 찾아 읽는다. 집안 살림을 도맡고 있는 김 씨는 생활정보에 관심이 많다. 도서관 입구에는 도서관에서 하는 각종 프로그램 소개부터 부동산이나 의료 정보, 세금 안내문까지 각종 생활정보지가 진열되어 있다. 진열대를 천천히 살펴보던 김 씨가 '정원 관리법'을 소개한 도서관 프로그램 안내문 한 장을 집어들었다. "도서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주는 프로그램이 참 많아요. 계절이 바뀌면서 정원 관리 때문에 고민이 많았었는데 잘됐네요." 이처럼 도서관은 늘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한발 앞서 마련하고 있다.

이 도서관에는 도서를 포함해 DVD, 오디오북 등 7만5천여 개의 장서가 보관돼 있다. 필라델피아 합창단 예술감독을 하고 있는 이 씨는 음악 전문잡지와 CD를 즐겨 찾는다. 아이들도 도서관에서 평소 보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퍼즐게임을 하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이 가족이 처음부터 도서관과 친했던 것은 아니다. 김 씨는 "대구에 살 때는 도서관을 이용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미국에 온 뒤 도서관이 생활의 일부분이 됐다"고 말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영어가 서툴렀던 부부는 낯선 미국 생활에 힘들어했다. 이때, 이웃들이 부부에게 미국 생활 정착에 도움이 된다며 소개해 준 곳이 도서관이었다. 김 씨는 "도서관마다 이민자들을 도와주는 수업이 있다"며 "도서관 이용법, 도서관에 있는 신문이나 책 등을 활용한 영어수업, 은행계좌 열기 등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 수업을 듣기 위해 김 씨는 꼬박 1년을 도서관에 다녔다고 했다. 처음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 땅을 밟았던 김 씨는 어느덧 한국 사람들에게 미국 문화를 알려주고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국 유학원 대표가 됐다. "도서관이 없었다면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도서관은 제 꿈을 찾도록 도와준 든든한 후원자예요."

◆도서관 키즈 육성하는 미국 사회

두 아들 요셉(15)'지섭 군은 어렸을 적부터 도서관 혜택을 받고 자란 '도서관 키즈'다. 이 씨는 "퇴근 후에는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갔었다"며 "도서관에는 동화구연부터 마술쇼, 여름 캠프 등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했다"고 말했다.

헌팅턴 밸리 도서관은 개에게 책 읽어주기, 핼러윈 파티 등 어린이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어린이실에는 책뿐만 아니라 장난감이나 인형, 문구류 등을 비치해두고 있다. 헌팅턴 밸리 도서관 사서 테자나 씨는 "어렸을 때 만들어진 독서습관은 평생 이어진다. 어린이에게 책과 도서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우리의 중요한 업무"라고 강조했다.

이제 두 아들에게 도서관은 일상이 됐다. 특히 요셉 군은 학교수업이 끝나면 늘 이곳 도서관에서 2~3시간을 보낸다. "학교랑 가깝고 과제에 참고할만한 자료가 많아서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요."

요셉 군의 학교과제는 여러 자료를 수집해서 발표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이번 과제는 1896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프레젠테이션(PPT) 발표. 과제를 하려면 다양한 책을 참고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 대부분 학교는 주변에 도서관이 있다. 요셉 군 학교와 헌팅턴 밸리 도서관은 걸어서 3분 거리다.

도서관 사서는 요셉 군의 또 다른 선생님이다. 도서관 사서들은 학교를 통해 수업용 자료를 미리 파악해 준비해둔다. 학생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제공 가능하다. 학교도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두 아들의 엄마인 김 씨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학년마다 도서관 이용법과 중요성에 대해 배우는 도서관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학교와 도서관이 협력 망을 구축해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이 도서관 샤론 관장은 "우리 도서관의 목표는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무언가를 탐구할 때, 찾는 첫 번째 장소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 가족은 "한국에서는 도서관을 독서실처럼 혼자 공부하는 공간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도서관은 굉장히 즐거운 공간"이라며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 이용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한다"고 바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글 사진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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