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족 10년차 황 기자의 생활요리 도전기
자취 생활 10년차, 자신 있는 요리는 김치볶음밥과 파스타. 손님이 집에 찾아올 때마다 이 두 가지만 무한 반복하며 임기응변으로 살아왔다. 손님들은 "파스타가 맛있네"라며 칭찬했지만 그것은 대형마트에서 산 토마토 스파게티 소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요리였다. 드디어 때가 왔다. 제빵 체험 기사를 쓰며 고생한 뒤 (본지 2월 22일 자 11면 기사 참고) 다시는 음식 만들기 체험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입맛이 MSG(화학조미료)에 완전히 길들여지기 전에 생존을 위해 요리를 배워야 할 시간표다. 대구 수성구 프레시 키친(FRESH KITCHEN)의 신선영 셰프에게 도움을 청해 싱글족에게 꼭 필요한 '생활 요리'에 도전했다.
◆ 밑반찬 3종 세트, 가장 인기 많아
오후 6시 30분. 퇴근길 기자가 향한 곳은 요리 학원이었다. 신선영 셰프는 수업에 쓸 요리 재료를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두세 사람이 팀을 이뤄 함께 요리를 완성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신 셰프는 기자를 포함해 수강생 7명의 실습 분량을 각각 다른 그릇에 담아뒀다. "3, 4명이 같은 조를 만들어 요리하면 한 사람은 양념장만 만들고, 한 사람은 설거지만 실컷 하다가 집에 가요. 한 명씩 자기 요리를 직접 만들어봐야 실력이 늘죠." 옳은 말씀이었다.
이날의 메뉴는 닭갈비와 고구마 치즈 크로켓. "닭갈비는 어렵지 않은가요?" 기자의 질문에 신 셰프가 고개를 저었다. "닭을 손질해서 재료 넣고 잘 볶는 게 전부"라며 희망을 줬다. 취미반을 주로 운영하는 프레시 키친은 거창한 요리를 만들지 않는다. 고등어조림, 양파 볶음처럼 '제철 재료를 활용해 쉽게 만드는 가정식'이 목표다. 수강생 중에는 칼을 처음 잡은 사람, 설탕과 소금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저녁반 수업은 주로 학생과 직장인들이 찾는다. 외식이 지겨운 사람들, 집밥이 그리운 20, 30대들이 제 손으로 건강한 음식을 직접 만들려고 학원 문을 두드린다. 이날 수강생 6명 중 남성도 2명이나 있었다. 직장인 권구엽(29) 씨는 최근 고등어조림 조리법을 배우며 요리에 눈을 떴다. 권 씨는 "생선 손질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해볼 만하더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자취생인 배다원(25'대학원생)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로 '밑반찬 3종 세트'(양파볶음, 장조림, 마늘종 새우볶음)를 꼽았다. 배 씨는 "자취생인 나한테 진짜 필요한 메뉴다. 또 만든 반찬을 집에 가져갈 수 있어서 더 좋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 처음 만져 본 닭, 생각보다 괜찮다
본격적인 시작이다. 40분 정도 셰프의 시범이 이어졌다. "나무 도마를 칼로 긁을 때 칼을 45도 정도로 눕혀야 나뭇결이 일어나지 않는다" "음식이 짜면 물 대신 설탕을 넣어라" "우유팩에 신문지를 채우고 나서 폐기름 버리면 된다." 조리법보다 더 도움이 된 것은 이런 실용적인 정보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거지. 기자는 요리가 끝난 후 싱크대에 산처럼 쌓이는 설거지거리 때문에 요리가 부담스러웠다. 요리가 먼저냐, 설거지가 먼저냐 그것이 고민이었다. 신 셰프가 명쾌한 답을 줬다. "설거지거리를 최소화해야 해요. 채소 담긴 그릇은 곧바로 씻어 다시 쓰고, 요리하면서 수시로 그릇을 씻으세요."
닭갈비와 고구마 치즈 크로켓 조리는 동시에 시작된다. 가장 먼저 냄비에 물을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린 뒤 채소를 썰었다. 이날 기자는 닭고기를 처음 만졌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리고 생선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신 셰프는 "우리는 완성된 음식만 먹으니까 재료를 만져볼 기회가 없다. 맛은 알아도 재료의 생김새를 모르는 경우도 많은데 우엉과 연근을 구분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수강생 윤은영(34) 씨는 "지난 수업에서 생선 손질을 하지 않았다면 고등어 지느러미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수업 첫날 오징어를 손질했고, 육류, 고등어에 이어 조류 손질법까지 터득했다"며 뿌듯해했다.
복병은 닭다리의 지방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시간이 지체됐고, 다른 수강생보다 속도가 뒤처지기 시작했다. 가장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닭갈비 볶기에서도 실수를 연발했다. 급한 마음 탓에 뒤집개 대신 나무젓가락으로 볶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닭갈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념장이다. 레시피를 따라했는데도 맛술 계량에 실패했다. 한 숟가락이라도 가득 퍼야 할지, 조금 퍼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 뒤죽박죽이 됐다. 마음이 급해지자 레시피는 보이지 않았고, 시험 커닝하듯 옆 사람의 조리법을 계속 훔쳐봤다.
◆ 요리를 완성한 자만이 집에 갈 수 있다
마음이 급해지는 이유를 알았다. 수강생들이 하나둘씩 요리를 끝내고 음식을 담아내자 나도 집에 가고 싶어졌다. 옆에 있던 수강생이 "빨리 집에 가고 싶으면 집중해서 요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력한 동기 부여다.
닭갈비보다 어려운 것은 크로켓이었다. 조그마한 녀석이 손은 더 많이 갔다. 신 셰프는 "고구마를 너무 오래 삶으면 죽이 된다"고 주의를 줘 10분 만에 건져냈다. 하지만 '한 입 크기로 빚어야 한다'는 레시피의 조리 순서를 무시했다. 손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옆 사람과 비교하니 나의 크로켓은 거대했고,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그다음 순서는 밀가루, 달걀물, 빵가루 순서로 옷 입히기. 빵가루를 대충 입혀 기름에 튀기려고 하다가 신 셰프의 저지를 당했다. "빵가루를 더 꼼꼼하게 묻히세요."시곗바늘이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두 사람씩 완성된 요리를 각자 가져온 반찬통에 담아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나의 요리도 완성됐다. 이제 신 셰프의 냉정한 평가만 남았다. "음~ 고춧가루를 적게 넣었나요?" 그렇다. 한 숟가락의 분량을 정확히 몰라 매운 게 싫다는 이유로 고춧가루 분량을 줄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신 셰프는 "매운맛이 없고 양념이 달다"며 양념장의 실수를 정확히 잡아냈다. 대신 "닭갈비는 채소가 물러지지 않게 적당히 잘 볶았다. 크로켓도 크기가 약간 크긴 하지만 고구마를 잘 삶아서 반죽이 잘됐다"며 칭찬했다.
요리는 노동이었다. 2시간 30분 넘게 서서 요리했더니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귀가 준비를 하는 기자를 신 셰프가 불렀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밑반찬 요리 만들거든요." 반찬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해졌다. 단골 반찬 가게와 당분간 이별하고 내 손으로 밑반찬 3종 세트를 만들어보는 성취감을 느낄 기회구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 도움 : FRESH KITCHEN http://blog.naver.com/zespyzespy >
※ 이것이 요리 포인트!
닭갈비 : 닭갈비 양념장으로 순대볶음도 가능함. 재료를 넣고 볶기만 잘하면 됨. 쉽지만 있어 보이는 요리.
고구마 치즈 크로켓 : 고구마를 오래 삶으면 으깰 때 죽이 됨. 빵가루를 꼼꼼히 묻히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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