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바다' 빠졌더니 시름이 씻겨 지네…서산에서 마음 다스리기

입력 2014-10-11 08:00:00

간월암에서 바라보는 석양. 구름 사이에서 마지막 빛을 내뿜고 있다.
간월암에서 바라보는 석양. 구름 사이에서 마지막 빛을 내뿜고 있다.
해미순교성지를 찾은 순례객이
해미순교성지를 찾은 순례객이 '십자가의 길' 14개 비석 중 한 비석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왠지 마음이 심란해지는 날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뭔가 나아지는 것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의 연속, 그리고 누군가 건드리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은 날들의 연속이라면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외침일 수 있다. 심란해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특별한 여행 코스를 잡았다. 다수의 천주교 성지와 유명 사찰이 자리 잡은 충청남도의 '내포' 지방, 그중 서산은 풍경이 아름다운 불교 사찰과 천주교 순교 성지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절과 천주교 성지를 둘러보는 동안 내가 왜 그리 작은 이유로 심란하고 힘들어했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충남 서산을 다녀와서 깨달은 마음을 정리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라-해미순교성지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당시 들른 충남 서산, 당진의 천주교 순교 성지는 지금도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당진의 솔뫼성지와 서산의 해미성지는 교황이 방문한 뒤 순례객이 더 늘었다고 한다. 먼저 찾아간 해미순교성지는 천주교에 대한 참혹한 박해와 핍박이 이뤄진 곳으로 유명하다. 멀리서 보면 조용한 시골에 자리 잡은 성당의 모습이 먼저 보이지만 건물 뒤에 자리 잡은 박해의 흔적을 짚어가다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자신이 천주교나 기독교 신자라면 성지 정문 옆에 있는 작은 초가집을 들러보는 것이 좋겠다. '이름없는 집'이라 불리는 이곳은 누구든지 들어가 성경을 한 구절씩 이어서 쓸 수 있다. 성당과 사제관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순교성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숫골'이라는 비석이 보이는데, 죽음을 앞둔 순교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던 기도 소리를 주변 사람들이 '여수머리'로 알아들어 '여숫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도 지역의 천주교인을 처형하던 곳으로 유명한데 어떻게 순교했는지는 '진둠벙'이라고 하는 작은 연못에서 시작해 성지 외곽을 따라 세워진 '십자가의 길' 비석 14개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진둠벙'과 그 옆에 있는 '자리개돌'부터 순교의 흔적이다. '자리개돌'이란 순교자들이 '자리개질'이라는 고문을 당한 돌인데, 쉽게 말해 사람을 큰 돌에다 던져 패대기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문이다. 당시 충청도에는 수천 명에 달하는 천주교도들이 잡혀오는 통해 참수형을 집행할 사람이 없어 웅덩이에 교인들을 빠트리거나 생매장했다. 교인들을 빠트려 죽이던 웅덩이가 바로 '진둠벙'이며 지금의 순교성지는 교인들을 생매장했던 곳이다.

성지 내 전시실에는 성지 성역화 작업 때 발굴한 이름 없는 교인들의 뼛조각이나 치아 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실 안에 있는 끌려가는 교인들의 동상과 전시실 외부의 부조에 나타난 교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평화로운 모습이다.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면 고통도 달게 견딜 수 있다는 교인들의 의지를 동상과 부조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부조를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겪었을 고통보다 더 하찮은 고민과 고통에도 심란해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마음을 활짝 열어라-개심사, 간월암

'개심사'(開心寺)는 말 그대로 '마음을 활짝 여는 절'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정말 열린 마음으로 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그런 작은 절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라'고 쉽게 말하지만 마음을 연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개심사의 입구는 '나만 마음을 여는 일을 어렵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듯하다. 일주문을 지나 약간 경사진 길을 올라가다 보면 빨간색으로 '세심동'(洗心洞), '개심사입구'(開心寺入口)라고 쓰인 작은 비석을 만난다. 그 뒤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야 개심사가 살짝 얼굴을 비춘다. 표지판에는 일주문부터 대웅보전까지의 거리는 400m 정도지만 계단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그만큼 마음을 열어야 개심사는 얼굴을 비춘다.

막상 올라가면 건물이 몇 채 없는 작은 절 같지만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명부전'을 포함한 또 다른 건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명부전 뒤로 '전망대 0.6㎞'라는 팻말이 보인다. 팻말을 따라 올라가다가 만난 정순영(56)'김해은(54) 씨는 처음 본 기자에게 마음을 열었다. 올라가는 동안 말동무가 되어준 이 두 아주머니는 전망대까지 난 산길을 오르는 동안 자신의 어린 시절, 처녀 시절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줬다. 전망대를 약 300m 앞두고 자리 잡은 쉼터에서는 자신들이 싸온 찐 옥수수와 사과를 나눠주기도 했다.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지만 마음을 열었을 때 만나는 인연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법이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서산의 들녘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은 덤이었다. 내려가는 길에 두 아주머니는 "서산에서 취재 잘하고 좋은 추억 많이 쌓고 가세요"라며 마지막 인사말을 건넸다.

해 질 녘이 다가오자 발걸음도 마음도 살짝 급해졌다. 서해안 간월도에 위치한 간월암은 밀물일 때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물이 들어찼을 때 사람들을 건네주는 뗏목이 있었지만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다. 다행히 도착했을 때가 썰물 때여서 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 무학대사가 수도한 곳으로 유명한 간월암은 서해바다와 서해로 지는 낙조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해 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간월암에 모여들었다. 오후 5시 30분이 넘어가자 점점 노을의 주황 색깔이 하늘과 바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해가 들어가는 바람에 찬란하게 퍼지는 노을은 볼 수 없었다. 다만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간월암과 바다를 신비로운 존재로 보이게 했다.

이제는 간월암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질지도 모른다. 많은 관광객이 찾다 보니 스님들의 수도가 심하게 방해를 받아 암자의 운영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뗏목의 운항이 중지된 이유도 주지 스님의 요청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연이 된다면 다시 간월암에서 지는 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