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글이 나라 글이 되기까지

입력 2014-10-09 09:23:48

이상규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전 국립국어원장)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이 전 국민의 소통 문자로 자리를 잡기까지 4대 중요 국가 어문 정책의 변화가 있었다. 첫째, 한글 창제이다. 계층을 뛰어넘는 소통 문자 한글이 세종 25년(1443년) 12월에 탄생했지만, 그 한글 사용은 잠시뿐이었다. 조선조 주류 계층의 사대부들에게는 철저하게 외면을 당하였다.

둘째, 고종 32년(1895년)의 국한문혼용 선포이다. 한글 창제 이후 450여 년이 지나서야 겨우 한자와 섞어 쓰기를 한 국한문혼용 시대가 열리면서 한글이 공식적인 나라 글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셋째, 일제 강점기간 동안 조선어학회가 오늘날 4대 어문 규정인 ▷한글 맞춤법 통일안 ▷외래어 표기법 ▷표준어 규정 ▷로마자 표기법 등의 기본 골간을 마련하고, '조선어큰사전'의 편찬을 이끌어낸 일이다.

그러나 당시 식자들은 여전히 한자 사용을 고집하였다. 국한문혼용체는 1960년대까지 유지됨으로써 계층 간의 소통 문자는 한글, 한자, 영어 등 여러 나라 문자가 신문과 교과서 등에서 마구 뒤섞여 있었다. 한자가 섞인 국한문혼용체를 온전히 읽을 수 있는 국민은 0.8%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넷째,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전용화 선언이다. 1968년 10월 9일 한글날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1월 1일부터 전면 한글 전용화를 실시한다는 친필로 쓴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세종대왕이 꿈꾸었던 이상이 현실이 되어 우리들의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의 지혜와 창의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나라 글자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 전용화의 용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한자 옹호의 관성은 꼬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교육부 장관은 초등학교 3학년 이상 한자 교육을 실시할 것이라 밝혔다. 50여 년 전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전용화 정책에 전면 위배되는 교육 정책을 내놓은 박근혜정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전용화 정책의 핵심 4대 목표는 1)문맹을 없애고, 2)국민의 지식 수준을 높이고, 3)문화의 전달과 교류, 4)교육의 능률 향상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 방식 곧 초'중'고등학교 교재를 단계적으로 한글 전용으로 개편하는 강력한 방안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4대 목표를 전제로 추진된 한글 전용화 정책의 성과는 첫째, 10년 이내에 전 국민의 문맹률 65% 감소, 둘째, 한류 열풍과 한국 문화의 융성과 발전의 기초, 셋째, IT 한글 정보화 시대의 기반 마련, 넷째, '세종학당'의 해외 진출과 한글의 문화 영역 세계적인 확대 등이다.

진실로 국민 집단지성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문 서적의 대대적인 한글 번역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그러한 일을 담당할 전문 인력을 키우는 일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한다. 한글의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나라 지식'정보의 발전을 위해서도 빗발치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글전용을 선언했던 1970년 이전으로 역사의 시곗바늘을 되돌릴 필요가 있는지, 어느 길이 더 합리적인지를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한자 교육의 문제와 한자 공용의 문제를 가지고 국가 사회의 갈등 요인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놓아둔다.

이상규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전 국립국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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