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넌 늘 뛰어다니지.
난, 언제나 기어다닌단다.
너에겐 원망도 미움도 없지.
나에겐 모두가 웬수 같구나.
내 맘 속에 원망을,
내 맘 속에 미움을,
모두 버리면 나도 해탈할 수 있을 것을.
해 뜰 무렵 황금 들판으로 나간다. 들판 벼논에 새벽에 내린 이슬이 맺혀 진주처럼 반짝인다. 왼손에 소주병 하나를 들고 오른손으로 바꿔가며 메뚜기를 잡는다.
메뚜기들은 이슬을 맞아 낮처럼 재빠르게 뛰거나 날지 못한다. 가을 내내 벼와 볏 잎, 콩잎을 먹고 자란 메뚜기들은 우량아처럼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지금이야 재미나 소일거리로 메뚜기를 잡지만, 어릴 적의 메뚜기는 심심풀이가 아니었다. 틈만 나면 들판으로 나가서 메뚜기 사냥에 나섰다. 마늘 넣는 망이나 주전자를 가지고 논틀길을 걸으며 필사적으로 메뚜기를 잡았다. 그걸 들고 집에 오면 엄마는 왜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한소끔 끓여서 냄비에 볶아 주셨다.
그런 날은 가족 모두 단백질을 실컷 섭취하는 날이었다. 평소에 육 고기는 못 먹어 보고 기껏해야 민물고기나 먹던 우리 식구들에겐 오랜만에 먹어보는 별미였다. 우리도 입에 대지 못하는 벼를 실컷 포식하고 자랐으니 영양가가 풍부한 것을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알맞게 말랑말랑하고 입을 맞춘 듯 고소하던 그 맛.
메뚜기는 왜 톡톡 튀어 오르는 걸까. 먹고살기 위해서이다. 먹고사는 것. 얼마나 신성하고 경건한 것인가. 인간이 도약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건 목적이 다르다. 사회적이나 금전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려는 안간힘이다. 참으로 불쌍하고 치사하지 아니한가.
우리는 메뚜기를 들 메뚜기와 산 메뚜기로 나눈다. 들 메뚜기와 달리 산 메뚜기는 먹지 않는다. 색깔도 다르다. 들 메뚜기는 여름까지 보호색으로 초록색이다가 가을이면 누렇게 변하지만, 산 메뚜기는 나무하러 가면 눈에 띄어도 언제나 회색이다. 우리는 산 메뚜기를 보면 소 닭 쳐다보듯 했다. 어차피 먹는 것이 아니니까.
방아깨비를 그렇게 부르는 건 뒷다리를 쥐고 있으면 디딜방아를 찧듯이 머리를 주억거리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꼭 절을 하는 듯하여 철없는 우리는 그 녀석을 잡으면 방아 놀음에 빠졌다. 나중엔 나도 높은 사람 만나면 누구에게나 그랬으니. 그 녀석이 예습을 시켜준 것일까? 나는 언제나 절 안 하고 살까?
해 질 무렵 수원 농촌진흥청 논에 가서 메뚜기 잡는다. 여기엔 농약을 주지 않아 지금도 메뚜기가 많다. 소주병에 반 병쯤 넣어서 노을을 등지고 돌아오면 마음이 질화로 같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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