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ㅋㅋ클래식] 가난한 들판에도 꽃은 핀다-베토벤(상)

입력 2014-10-02 08:25:15

▲카핑 베토벤(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한 장면.
▲카핑 베토벤(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한 장면.

들꽃이 좋다. 꽃 자체로도 참 예쁘거니와 머금은 진솔한 향기가 좋다. 그리고 무엇 하나가 더 있다. 척박한 땅에서 혹독한 환경에 맞서 스스로를 틔우기 위한 아름다운 몸짓, 바로 생명력이다. 그래서 들꽃은 보살핌 속에 자란 화초보다 가난하지만 거룩하다.

그런 점에서 베토벤을 존경한다. 진한 향기를 머금은 그의 음악은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어디 베토벤뿐이겠는가.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멘델스존 등 저마다 음악사에서 큰 획을 그은 대가들의 작품은 어쩌면 꽃보다도 더 아름답고 감사한 것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토록 베토벤에 열광하는가. 고난을 환희로 승화시킨 예술가, 바로 그 이유에서다. 아름다운 작품에는 감탄을 보내지만 역경을 딛고 예술로 '승화'된 작품을 접하면 존경을 보내게 된다. 트랙을 내달리는 우사인 볼트에게는 감탄을, 의족에 의지하며 달리던 어느 육상선수에게도 비슷한 존경을 보냈던 것 같다.

알려졌다시피 그는 귀가 어두웠다. 음악가에게 귀가 어둡다는 것, 아니 체험하고서야 그 상실감을 이루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음악을 듣지 못함은 불편을 넘어 불행일 것이다. 분명 엄청난 고통일 것이다.

영화 '카핑 베토벤'은 베토벤 말년에 불운한 삶을 잘 그려낸다. '교향곡 9번' 초연을 앞두고 청력을 잃어가는 베토벤, 이에 따르는 히스테리로 점점 괴팍해지던 중 자신이 그린 악보를 연주용으로 카피하기 위해 '안나 홀츠'라는 젊은 카피스트를 고용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탐탁지 않았지만 그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교향곡은 활력을 띠며 마무리 짓게 된다. 그러나 청력을 거의 상실한 베토벤은 사실상 지휘가 불가능하였고, 역시나 연습도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이윽고 초연 날에 궁여지책으로 안나는 베토벤이 지휘하는 맞은편에서 지휘하고 베토벤이 안나의 지휘를 카피하면서 연주는 무사히 끝난다.

많은 사람들은 그 초연 장면을, 특히 합창이 등장하는 부분을 영화의 백미로 꼽는다. 영화뿐 아니라 사실 이 부분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름 끼치게 한다.

미미파솔 솔파미레 도도레미 미레레. 너무나 익숙한 선율, 선율만 놓고 보면 동요 '학교종이 땡땡땡'보다 더 쉬운 난이도의 이 선율이 우리로 하여금 소름을 끼치게 하니 조금은 의아하다. 도레미파솔, 그는 고작 다섯 음으로 환희를 표현했다니 말이다. 청력 상실이라는 고통 속에서 환희 즉 희망의 메시지를 세상에 던졌으니 말이다.

의아함은 음악으로 나타나는데 일단 합창을 오케스트라에 삽입한 것이다. 이전시대 교향곡은 틀이 있었다. 긴 호흡으로 가는지라 처음에 힘을 아낀다고나 할까, 마라톤 주자가 처음에 힘을 비축하듯 보통 여리게 시작하여 절정으로 가며 극적으로 변하는데 베토벤은 처음부터 완력으로 때리고 시작한다. 특히 2악장은 오케스트라 악기에서 가장 비선율적인 팀파니를 전면에 배치하였다. 다른 악기가 흥분할 때 기껏 뒤에서 분위기나 북돋우던 타악기를 곡 처음에 그것도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 역할을 주면서까지 말이다.(다음 주에 계속)

이예진(공연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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