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예천군으로 10박 11일 농촌봉사활동을 떠난 때였다. 마을에 도착하자 주민들은 한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그곳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친환경 마을이었기에, 봉사 기간 동안 환경을 오염시키는 생활은 자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지금까지 마을을 찾은 봉사자들이 마을에 폐만 끼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100% 무공해 11일'을 달성하고자 굳은 다짐을 했다.
인공적인 것들을 주변에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도시 생활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하던 것들을 끊어버리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박하향이 나는 치약 대신 짠맛이 나는 소금을 사용했다. 지나치게 짠맛과 거친 알갱이에 얼굴은 찌푸려졌지만 인위적인 향에서 오는 개운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깔끔함이 입 안을 감쌌다. 맵고 짜고 단 과자들도 멀리했다. 그 대신 마을 주민분들이 주신 감자와 고구마를 간식으로 즐겼다. 자연 그대로의 맛 속에 숨겨진 단맛과 짠맛은 심심한 입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내친김에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습관적으로 확인하던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자 자연스럽게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에 눈과 귀를 집중시킬 수 있었다. 농활 대원들은 자연 속의 맛과 즐거움을 찾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위기는 5일 만에 찾아왔다. 친구 한 명이 '친환경 비누' 탓에 거칠어지는 피부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녀의 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굳은 의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와 가까이 지내던 두 명의 동생들도 "불편해 죽겠다"며 규칙을 어기기 시작했다. 모두가 '힘들다'고 느꼈지만 그것을 입으로 내뱉고, 귀로 듣는 순간 목표 달성은 '즐거움'이 아닌 '고행'이 됐다. 그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나머지 대원들은 그녀를 볼 때마다 칭찬하기로 약속했다. 그것은 화장품 뒤에 가려졌던 그녀의 진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일이었다. "화장품을 안 바른 피부에서도 빛이 나네!" "머릿결은 타고 난 거야?"라며 그녀를 은근히 띄워 줬다. 시간이 지나자 거울 속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는 빗자루 같아 보이던 머릿결에도 이제는 만족하는 눈치였다. 거칠어졌던 것은 그녀의 피부가 아니라 불만이 가득했던 그녀의 마음가짐이었다는 사실도 동시에 깨닫는 듯했다.
'무공해 11일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추억도 좋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도 뿌듯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비범한 능력을 얻은 것이 더 기뻤다. 오늘도 취업 준비생으로, 혹은 사회 초년생으로 힘든 하루를 보내는 친구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들 때문에 불행할 때가 많잖아.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갖지 않았던 농활 때를 떠올려. 아무것도 없었지만 작은 것에 웃고 즐거워했잖아. 행복은 가진 것에서 오는 건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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