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한국 사회복지제도의 그늘, 반지하 셋방 세 모녀 유서

입력 2014-09-27 07:33:45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윤영, 정환봉 지음/ 북, 콤마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 2월 26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 한 2층 단독주택의 가장 밑바닥인 반지하 방에서 번개탄을 피워 목숨을 끊은 세 모녀가 발견됐다.

이들이 남긴 유서에는 '죄송합니다' 라는 글귀가 거듭 적혀 있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과 정환봉 한겨레 기자, 두 저자는 유서에서 숨은 행간을 찾아낸다. 꽤 사회적이고, 욱신하다. 한국의 기초생활수급제도가 외면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송파의 세 모녀는 어떻게 살았으며, 그들이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더라면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보건복지부는 "이용할 수 있는 복지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란 꽤 어렵다.

우선 소득과 재산의 환산액 등을 합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아야 한다. 환갑의 어머니는 최근까지 식당에서 월 150만원을 벌었다. 최저생계비보다 많다. 둘, 부양의무자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세 모녀는 근로능력자다. 근로능력이 있는 기초생활수급 신청자에게는 추정소득이 부과된다. 일하던 어머니가 일을 못할 상황에 처했고, 서른을 넘긴 두 딸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말 못할 상황에 부닥쳤지만, 단 두 가지 이유로 세 모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책은 한국 기초생활수급제도의 허점을 지적한다. 하나, 신청해야만 수급을 받을 수 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없다. 올해 국내 기초생활수급자는 130만 명, 하지만 비수급 빈곤층은 더욱 많은 180만 명으로 추산된다. 둘, 기준도 까다롭다. 예를 들면 연락도 되지 않는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 제공동의서를 제출해야 하고, 노숙자는 거주지를 마련해 확실한 주소를 적어내야 한다. 셋, 한국에서는 수치심을 대가로 복지를 얻을 수 있다.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일을 할 수 없는 수급자는 부정 수급자로 낙인찍히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한국의 가계 부채는 이제 1천조원 규모에 달하고,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6위이며, 자살충동 원인 조사에서는 성적 및 진학 문제가 1위인 10대를 제외하면 20대 이상부터는 모두 경제적 어려움이 1위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여성과 아동, 노인의 빈곤이 심각해지고, 이들 외에도 사각지대에 자리 잡는 빈곤층이 늘고 있다.

이 책은 기초생활수급제도를 포함한 한국 복지제도의 혁신적이고도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죄송합니다'라는 이야기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270쪽, 1만4천원.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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