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산책길에 청소차를 만났다. '깨끗한 도시, 희망의 도시'라고 쓰인 그 차는 나의 바로 코앞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밤새 모아놓은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있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원까지 청소차와 동행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도망치듯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뿔싸, 이번에는 마주 오는 다른 청소차를 만나게 되었다. 지나가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그 길 또한 청소차가 막 작업을 끝내고 온 터였다. 쓰레기의 흔적으로 악취가 장난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는 시민들이 출근하는 시각에 청소차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왜 하필 복잡한 출근시간에 청소차가 작업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법정 근무 시간 외에 일하게 되면 두 배의 수당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한국은 특별 수당 없이도 이른 아침에 청소차가 움직인다고 자랑했더니. 근로자의 인권에 위배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근로자의 인권(人權). 나는 머리 한쪽이 뻥 뚫리는 것을 느꼈다. 환경미화부서에 근무하는 나의 남편이나 형제가 허구한 날 죄인처럼 한밤중이나 신새벽에 일을 해야 한다면 어떻겠는가. 일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출근시간도 나무라고, 산책 시간도 불편해하는 나 같은 몰염치는 또 어찌할까.
갈등 속에 도착한 공원 연못에는 연꽃이 한창이었다. 애초에는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곳을 흙과 물을 채워 연을 심었다고 한다.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연향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농경시대에는 쓰레기가 혐오대상이 아니라 귀한 자원이었다. 오물은 물론 생활쓰레기까지 짚으로 덮어 거름으로 발효시켰다. 거름은 곧 논밭으로 뿌려져 곡식의 영양분이 되었다.
만개한 연꽃을 보며 연못을 서너 바퀴 돌았다. 어떤 사람이었기에 쓰레기 매립장을 연밭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저 꽃 또한 지고 나면 거름이 되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 내리라. 그렇다면 거름은 꽃의 전신이 아니던가. 동일한 본질에서 악취가 나기도 하고 향기가 나기도 한다는 말일까.
유난히 넓은 잎과 긴 대를 가진 연꽃 한 송이가 나의 소소한 발견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윙크를 하듯 갑자기 푸른 잎을 활짝 펼치더니 기분 좋게 몸을 한바탕 흔들어 보였다.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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