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내리쬐던 햇살도 연이은 태풍의 영향으로 그 기세가 한풀 꺾이고 간간이 내리는 비로 잠시나마 불볕더위를 잊고 있던 여름의 어느 날, 그 시원함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출동 벨소리가 울렸다. "OO구조대, OO동 OO빌딩에 벌집 제거 출동하세요!"
계절마다 피는 꽃, 먹는 음식, 기온이 조금씩 달라지고 생활환경에 변화가 있듯이 소방서에서도 계절마다 신고 접수되는 출동 유형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으레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이 되면 벌집 제거 신고가 접수되기 시작하고 한여름이 다가오면 그 횟수는 더욱 잦아진다. 벌집 제거 신고건수는 매년 수천 건에 달하고 기온이 높은 7~9월에 전체 출동건수의 90%가 집중된다. 특히 도심 녹지사업으로 인하여 벌이 활동할 수 있는 서식환경이 좋아졌고, 따뜻한 곳을 찾는 습성이 있는 벌들이 온도가 높은 도심지역에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동 중 대략적인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신고자와 통화하여 벌집이 건물 외벽에 붙어 있다는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그런데 커다란 벌집에 그것도 건물 외벽 9층이라니…. 아무리 위험한 환경 속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가진 구조대원들이지만 일반 벌의 수십 배가 넘는 독성을 지닌 말벌과 상대하며 벌집을 제거할 때는 늘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벌집은 로프를 타고 내려와 공중에서 몸을 로프에 고정시킨 뒤 벌집을 제거해야 하는데, 구조대원은 부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실로 까다로운 작업이다.
인명피해 발생 우려가 없는 장소의 벌집이라면 비가 오는 상황에서 구조대원의 안전을 위해 신고자에게 특별한 위해가 없는 상황임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 건물의 옥상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어 자칫 벌들의 공격에 어린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어 필히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필자도 벌집 제거 활동 중에 몇 번이나 말벌의 공격을 받아 그 독성을 충분히 맛본 경험이 있고, 바로 옆 동료가 벌에 쏘여 어지러움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긴급히 이송되는 장면까지도 목격하였다. 그 때문에 그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어려운 환경이지만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한 사명감으로 신속히 벌집 제거 활동에 착수했다.
각자 임무를 분담하여 건물 옥상에 로프를 설치함과 동시에 벌집 제거 장비를 준비하고 보호복을 착용했다. 노출된 부분이 없도록 완벽히 보호복을 착용하고 벌집을 담을 수 있는 채집망, 벌 퇴치용 살충제를 휴대한 채 안전벨트에 로프를 결합하고 천천히 벽을 타고 내려갔다. 벌집 근처에 도달해 로프로 몸을 고정시키자 위협을 느낀 말벌 수십 마리가 벌집을 에워싸고 나의 온몸에 붙어 공격을 시작했다.
보호복의 얼굴 부분은 앞을 볼 수 있게 가는 눈의 망으로 되어 있는데 벌들이 여기에 붙어 입으로 망을 물어뜯는 모습이 보였다. 항상 벌집 제거 활동 중에는 심리적 안정이 가장 중요하므로, 벌은 절대로 보호복을 뚫을 수 없으며 지극히 안전하다고 되뇌며 침착하게 채집망에 벌집을 담았다. 벌집이 있던 곳에 아직 남은 잔해물을 긁어 내고 그곳에 살충제를 뿌려 벌집 재생력을 방지하고 다시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다음 벌집을 담은 망을 들고 하강했다. 아래에서 보니 벌들이 없어진 벌집 주위를 아직 배회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매년 벌에 쏘여 병원 신세를 지는 피해자가 1만여 명에 이른다.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한 예방법으로는 일단 벌집 주위에 접근하지 말고 벌을 놀라게 하지 말아야 하고 화려한 원색의 복장을 피하며 향이 강한 향수나 화장품 등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만약 벌의 공격을 받을 시 가능한 한 낮은 자세를 취하거나 주변보다 낮고 그늘진 곳으로 피해야 하고 벌들의 공격에 물속으로 피하는 경우가 있는데 벌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니 유의해야 한다. 벌에 쏘였을 때 박힌 침을 손을 이용해서 제거하면 더 깊이 박힐 수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 카드를 이용해서 밀어내는 방법으로 제거한다. 그래도 빠지지 않을 시에는 병원에서 조치를 받고 쏘인 부위는 식염수나 비눗물로 씻어낸 다음 얼음으로 냉찜질을 하는 것이 좋다.
만약 벌에 쏘인 사람이 어지러움,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는 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신속하게 119에 신고해서 응급처치와 함께 병원 이송이 이루어지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주의 사항으로 간혹 분무형 살충제 등에 불을 붙여서 직접 벌집을 제거하려다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무리한 행동을 삼가고 119에 신고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박정우 대구중부소방서 119구조대 소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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