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생각하다…연예계 MC 4인방의 리더십

입력 2014-09-13 07:30:07

신동엽
신동엽

TV 예능 프로그램은 리더십의 형태를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현장이다. 2000년대 들어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이 1인 MC 체제에서 집단 MC 체제로 바뀌고 일대일 토크쇼에서 여러 명의 게스트들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른바 '떼토크' 로 바뀌었다. 그래서 프로그램 안에서 출연자들을 조율해 줄 리더가 필요했고 그때부터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의 리더십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이경규의 모습에서 리더십 전형을 발견해냈고 한때 이들의 리더십이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들의 리더십을 살펴보자.

◆유재석-배려하고 섬기는 리더십

유재석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배려'와 '겸손'이다. 유재석은 자신이 한 발짝 물러서서 출연자를 배려하고 중재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오늘날의 유재석을 있게 한 '무한도전'만 보더라도 개성이 강한 출연자들을 조율하는 데 있어서 유재석은 출연자들을 누르기보다는 같은 수준에서 놀면서 상황을 조율한다.

유재석 본인이 무한도전에서 다른 출연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라고 하며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띄우고 이를 통해 자신의 위치도 상승시킨다. 이러한 유재석의 리더십은 '무한도전' 아이템 중 상당한 체력을 요구하는 특집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011년에 있었던 조정특집에서 2천m 연습 때 결승점에 들어오자마자 초주검이 돼 버린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약한 체력이라는 한계에도 리더로서 솔선수범하는 유재석'의 모습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유재석이 이러한 배려와 섬김의 리더십을 갖게 된 데에는 오랜 무명생활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직시했고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배려형 MC의 전략을 세운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재석은 개인기, 외모, 카리스마, 유행어가 없는 '4무(無) 예능인'으로 불린다. 그렇다 보니 좌중을 휘어잡아 군림하는 스타일로는 성공할 수 없기에 주로 상대방의 장단점을 파악해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다.

◆강호동-강력한 카리스마 리더십

유재석이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만들어 팀을 이끄는 데 비해 강호동은 자신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해 팀원들을 설득시킨다. 강인한 체력과 화통한 목소리, 그리고 몸을 던져서라도 웃음을 이끌어내는 희생정신은 리더로서의 큰 장점이다. 강호동은 이러한 장점을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접목시켜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간다.

지금의 강호동 리더십을 만들어 낸 일등공신은 바로 '1박 2일'이다. '1박 2일'에서 강호동의 리더십이 극대화되는 지점은 바로 '복불복'을 할 때였다. 특히 한 사람이 실패해 모두가 저녁을 못 먹거나 야외취침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강호동은 멤버들을 다그치는 때가 많았다. 이러한 카리스마 때문에 '1박 2일'에서 강호동은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기차역에서 우동을 먹고 있던 김종민을 낙오시켜 버린 것도, 시청자 특집 때 여자 유도부 선수들의 야외취침을 이끌어 낸 것도 결국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강호동이 밀어붙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연자의 장점을 빨리 파악해 이를 극대화하는 부분도 강호동 리더십의 특징이다. 1박 2일 초창기 멤버였던 MC몽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재석은 이상한 멘트도 받아주고 같이 죽어줄 줄 아는 남자지만 강호동은 이상한 멘트를 하면 버린다"고 농담 섞인 푸념을 한 적이 있다. 이처럼 강호동 리더십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장점을 극대화시켜 팀을 이끈다.

◆이경규-변화의 리더십

이경규는 '버럭경규'란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될 만큼 호통과 독불장군적 리더십의 대표 명사였다. 이경규와 같이 MBC '일밤-상상원정대'를 진행했던 정형돈은 "당시 도전할 엄두도 나지 않던 놀이기구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놀이기구보다 더 무서웠던 게 이경규 선배의 싸늘한 반응이었다"고 할 정도로 이경규는 '무서운 선배' 중 한 사람으로 불렸다. 2008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이경규가 물러나자 그의 재기를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후배들을 윽박지르기만 하고 자신 위주로 프로그램이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가진, 비뚤어진 성격으로 알려진 그가 많은 게스트가 투입되는 최근의 버라이어티 경향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의 모습을 보이며 재기에 성공해 지금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녹슬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경규가 이처럼 재기에 성공한 이유로 '호통의 리더십'에서 '소통의 리더십'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이경규가 '남자의 자격'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소위 말하는 '꼰대'의 모습이 아니라 후배가 골탕먹여도 웃어넘기고 긴 녹화시간도 버텨내는 '노력하는 형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힐링캠프'에서 자신의 아픔도 털어놓으면서 어려운 사람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도 비쳤다. 이러한 노력은 2010년 KBS연예대상의 대상으로 돌아왔다.

◆신동엽-막후조정형 리더십

예능인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신동엽은 잘 조명되지 않는 예능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동엽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면박 주는 것을 잘 못하고 당해주는 것도 잘 못한다"며 집단 MC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엽의 리더십은 드러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신동엽은 '마녀사냥'이나 '안녕하세요' 등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집단 MC 체제에 적응하며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신동엽은 예전부터 '연출가적 감각을 지닌 예능인'으로 통했다. 출연자나 특정 게스트가 너무 나선다 싶으면 적절히 막아주고 대화에서 소외된 게스트가 있으면 참가를 유도해낸다. 크게 호들갑 떨면서 좌중을 압도하는 강호동이나 자신을 낮춰서 게스트를 살리는 유재석과는 달리 신동엽은 알게 모르게 게스트를 자기 손에 쥐고 흔든다. '안녕하세요'를 보면 일반인 출연자의 고민을 충분히 들어주다가 틈을 보이면 한마디를 날려 출연자 얼굴에 폭탄 CG를 그리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그래서 신동엽과 함께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신동엽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지금까지 말한 4명의 예능인이 보여준 리더십을 방송인 김제동은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TV 프로그램에서 제 안경을 벗게 하는 4명의 MC가 있습니다. 바로 강호동, 이경규, 유재석, 신동엽이죠. 강호동 씨는 소리를 질러 제가 안경을 벗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를 만들어 제 안경을 벗깁니다. 이경규 씨는 지위와 나이를 이용해 '벗어!'라고 호통을 치지요. 유재석 씨는 자신이 먼저 벗기 때문에 제가 안 벗을 수 없습니다. 신동엽 씨는 방청객들에게 '김제동 씨가 안경 벗는다고 웃길 것 같지 않은데 어때요? 아, 벗으란 이야긴 아니고…'란 식으로 안경을 벗도록 부추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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