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민심이 최악이라며 난리다. 정치권이 사나운 명절 민심 운운한 게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올해 추석 민심은 더 험악하다며 어김없이 먼저 말을 꺼내는 이유는 뻔하다. 겉으로나마 정치가 잘못되고 있다며 수긍이라도 해야 매를 덜 맞게 되고 '큰일'이라고 떠들어야 여론의 화살을 조금이나마 피해갈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어서다.
민심을 어떻게 다독이고 현실 정치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는 정치인의 계산서 항목에는 절대로 없다. 국회의원들의 뇌 구조상 밥값 제대로 하라는 성난 민심을 겁내거나 자숙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있다면 선거 기간 불과 몇 주뿐이고 4년 내내 '민심이 어떻더라'며 운이라도 떼야 그나마 의식 있고 양심 있는 정치인으로 취급될 것이라는 속셈이다.
당장 10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이 무산됐다. 진지하게 마주 앉아 꽉 막힌 정국을 풀어보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는 방증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중대하지만 국회가 오로지 세월호 법에 매몰돼 정쟁만 일삼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민심을 듣고도 이 지경이다. 이쯤 되면 '정치 실종'이라는 말도 사치다. 정치 유기(遺棄)이자 먹튀다. 세비가 아깝다거나 아예 국회를 해산하라는 말이 결코 홧김에 나온 소리가 아닌데도 정치권은 서로 다른 꿍꿍이속으로 요지부동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정치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에 대해 찬찬히 되돌아보면 해답은 명확하다. 여야가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할지라도 지향점은 같다. 바른 사회, 안전한 사회, 복지국가다. 하지만 2012년 대선 이후 거의 2년 동안 우리 정치는 목표점을 향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완전히 풀린 나사 꼴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130일이 넘도록 법안 처리는 제로다. 이 기간에 국회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송광호 의원 체포 동의안 부결이 전부다. 그럼에도 억대의 세비며 몇백만 원이 넘는 추석 상여금을 받아 챙겼다. 일하지 않는 머슴들 새경 주느라 정작 주인인 국민은 배를 곯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우리 국민 10명 중 4명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상을 '복지국가'로 보고 있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거의 모든 계층에서 복지국가를 원한다는 비율이 40% 가깝게 나타났다. 당장은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 있지만 20, 30년 후 가까운 미래에는 복지가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복지국가에 대한 틀을 만들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정치인들은 서로 국민을 위한다는 핑계로 권력을 틀어쥐는 일에만 골몰하면서 복지는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흔히 복지를 '소득분배가 공평하고 빈부격차를 줄이는' 개념으로 본다. 그러나 복지에는 더 많은 가치가 포함돼 있다. 약자를 배려하고 무임승차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수평적 구조의 사회,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기회가 주어지며 공공의 가치가 존중받는 등 범위가 더 넓다. 이를 작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핀(Pin)이 정치다. 성장의 시대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가치들을 하나씩 실현시키고 상식으로 만드는 힘은 바로 정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증기 기관과 철도의 발명으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19세기 세계 경제를 해마다 1퍼센트씩 성장시켰다고 학자들은 분석했다. 자동차'비행기를 출현시킨 2차 산업혁명은 지난 100년간 연평균 2퍼센트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이끌어냈다. 기술의 발명, 테크놀로지의 혁신으로 인류가 성장이라는 선물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3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정보혁명은 인류에게 어떤 성장을 가져다줄 것인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 1, 2차 산업혁명보다 성장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성장을 가로막는 절대 변수가 있다. 복지에 저촉되는 정치의 부도덕성, 이윤과 성과에 매몰된 사회구조다. 헤게모니와 이익에 목숨을 건 저급한 정치 때문에 공동체가 파괴된다면 이는 '바벨탑'의 비극과 다름없다.
세월호 특별법은 중요하다. 하지만 법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보다 더 고민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를 바꿔나가는 어떤 촉매제로 만들 것인지다. 이런 고민 없이 엉뚱한 공식만 널어놓는 무능한 정치는 부도덕 그 자체다. 국민의 바람과 기대를 넘어서지 못하는 정치는 한가지 길밖에 없다. 용도 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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