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는 센트럴파크 못지않게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원이 있다. 1850년대 대규모 공원부지 확보를 주장해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현재의 뉴욕 도심 공원들을 가능하게 한 시인이자 언론인인 윌리엄 브라이언트의 이름을 딴 브라이언트파크다.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이 공원은 과거 마약상과 노숙자들이 들끓던 위험지역이었지만 환경과 편의시설을 정비하고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상설 운영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공원으로 태어났다. 뉴욕 여름 공연의 전통이 된 '브로드웨이 인 브라이언트파크'를 비롯해 봄가을 '뉴욕 패션위크'가 열리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변하는 최고의 휴식과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도로와 교통, 아파트와 빌딩 등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자연환경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인공과 자연 사이에서 조화를 이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문화를 만들고 즐기며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도시를 만들고 경영하는 철학 역시 이러한 인간 존재의 특성에 대한 고려에서 출발해야 한다.
3년여의 재정비 공사를 마무리하고 지난봄 시민들에게 새단장한 모습을 보인 수성못은 환경 자체의 변모뿐만 아니라 대구시민들의 문화창조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 갈수록 놀라움을 더해 준다. 수성못 정비의 키워드를 환경과 문화로 잡은 의도가 제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환경 측면에서 이 사업의 핵심은 물길 연결이다. 먼저 신천에서 들어오는 물길을 좀 더 크게 만들어 하루 1만여t의 깨끗한 물이 수성못으로 흘러들도록 했다. 이 물은 두산오거리 범어천으로 흘러가 어린이회관 앞을 거쳐 동신교 아래 신천으로 다시 돌아간다. 시민들은 걷기 편한 흙길 산책로에서, 동남쪽 호안 데크에서 맑은 물을 더 가깝게 즐길 수 있다.
수성못을 문화소통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전망데크, 만남의 광장, 수변무대, 수상무대가 만들어졌다. 20년 전만 해도 포장마차들이 쏟아내는 소음과 오물, 악취가 가득하던 기피지역이 음악과 공연, 미술 등 문화예술 이벤트가 상시적으로 열리는 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하는 첫걸음이 시작된 셈이다. 앞으로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생활예술을 즐기는 시민들까지 이곳에서 창조적 재능을 발휘하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예정이다.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환경의 변모보다 더욱 역동적이다. 불법'무허가 건축물이 거의 정리됐고 기존 건축물을 개'보수하면서 거리 모습이 완전히 새로워졌다. 젊은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급증하면서 카페와 식당이 연출하는 풍속도 역시 독특하고 다양해졌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하루 2만~3만 명이 수성못 일대를 찾는 이유는 바로 환경과 문화의 조화에서 찾을 수 있다. 수성못의 환경 변화에 맞춰 인공물의 조화를 이루어내고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끌고 가는 주체는 온전히 대구시민이다.
내년은 수성못이 다시 축조된 지 90년이 되는 해이다. 수성못 재축조의 주역이었던 미즈사키 린타로에 대해, 못둑에서 수성들을 바라보고 빼앗긴 들을 민족정신으로 승화시킨 이상화 시인에 대해, 그가 어떻게 수성못이 재축조된 이듬해인 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는지에 대해 제대로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다.
환경과 문화의 변모 위에 역사의 육중함이 더해지고 그에 걸맞은 공연과 전시, 행사가 어우러진다면 수성못은 대구가 진정한 문화도시로 발전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문화를 만들고 즐기며 도시의 변화를 주도해갈 대구시민들의 역량은 충분히 준비돼 있다. 뉴욕에 브라이언트파크가 있다면 대구에는 수성호수공원이 있다고 자랑할 날이 기다려진다.
이진훈/수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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