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이 인문학이다

입력 2014-09-02 13:49:15

인문정신이나 정신문화가 반드시 공리적인 목적을 지향하며 출발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중략) 인문정신의 진흥과 내면화가 즉시적이고 가시적인 효과를 낳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근시안적 사고입니다. 다만 모든 정신적 가치가 그러하듯이 꾸준한 내면화와 확산이 확실한 형성력으로 작동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유종호의 '인문정신 진흥의 필요성' 중에서)

지난 7월 9일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 주최로 '인문정신, 사람과 사람을 잇다'는 주제로 인문정신 문화 진흥 대토론회가 진행된 것이지요. 학자들만이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관(官), 각 지역에서 인문학 운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민(民)이 모두 참석하여 인문학 진흥을 위한 소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녀온 사람의 소감을 빌려보면 다소 공허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소통보다는 드러냄에 그친 감이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발표자들도 내가 이처럼 어렵게 사업을 끌어왔는데 앞으로도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정책의 주체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이 인문학의 본질이라면 다소 미흡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나아가 초'중등 교육현장에서의 인문학 정책은 소외된 채 포럼이 진행되었다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초'중등 교육이 인문학의 시작인데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책이란 것은 본질적 성격에 따라 진행과정의 차이도 존재하는 것이지만 최소한 인문학 정책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거기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직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주체가 되는 정책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대구에서 초'중등 인문학과 관련된 정책을 본격적으로 실행한 지 5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작년 10월부터 초'중등 인문학 정책과 자료 개발을 시작하여 준비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10개월이 흐른 셈입니다. 그동안 교사지원단을 중심으로 '경연'(經筵)이라는 이름의 인문학 독서토론을 지속했습니다. 학생들은 '집현전'(集賢殿)을 열어 인문학 책읽기를 시도했습니다. 자율적인 '사람책' 운동도 시작했고, 특히 2인에서 5인 정도의 학생들이 인문학 관련 책을 읽고 테드(TED) 형식의 말하기를 하는 과정은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소위 '인문학 독서 나눔 마당'이라 불리는 프로그램입니다. 6월부터 초'중'고 학교 예선을 거쳐 7, 8월 지역 본선, 그리고 9월 20일에는 총 24개의 팀이 모여 대구 인문학 나눔 마당으로 확대, 진행될 계획입니다. 책이 기본 자료가 되긴 하지만 그 책과 자신의 삶을 결부시켜 행복한 삶, 의미 있는 미래를 구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참여한 아이들은 공부도 이렇게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이렇게 진행해오는 동안 교육청은 조용하게 지원했습니다. 가능하면 현장에서 먼저 바람이 불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교육청은 큰 틀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실행은 학교에서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현장의 변화는 교육부가 '전국 초'중등 인문소양교육 지원센터'를 대구에 설립하는 쾌거를 낳기도 했습니다. 지원센터가 하는 업무도 역시 그림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할 예정입니다. 지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전국 인문학자들과의 소통의 통로도 확보할 것입니다. 초'중등 교육에서 진행할 수 있는 인문소양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할 것입니다. 물론 그 주체는 당연히 학교이고, 선생님이고, 학생들이고, 학부모들이 될 것입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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