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준비한 꽃배, 강에 띄우며 한 해의 액운 떠나보내고 축제 시작
태국에는 두 개의 큰 명절이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설(이 나라의 새해는 4월 12일이며, 거리에는 'happy new year'라는 글들이 넘쳐난다)쯤에 해당하는 세계적인 물축제 '송크란'이 있다.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때를 택해 거의 광란에 가깝게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즐긴다. 지방마다 다르지만 북쪽에서는 3일간의 기간이다. 또 하나는 추석쯤에 해당하는 '로이(띄우다) 끄라통(꽃배)'인데, 인근의 강에 나가 한 해의 액운을 떠나 보내는 꽃배를 띄운다. 이어 비슷한 의미로 커다란 하얀 통 안에 촛불을 붙여 하늘로 띄워 보내는 '홈로이'(風燈'꼼로이)도 같이 올린다.
◆'쿤 맬라노이' 산골 분교 축제 모습
미리 축제를 준비하는 오지 학교의 모습은 평소와 다르게 활기차다. 해가 지기도 전에 아이들은 자신들이 며칠 동안 준비한 꽃들을 들고 하나둘 학교로 모인다.
푸른 바나나 잎으로 꽃 모양을 만들어 둘레를 감싸고 가운데는 황금빛 국화를 두세 겹 빙 돌린 후, 그 위에 초와 향들을 꽂았다. 아이들은 이것을 물 위에 띄우며 지난해 안 좋았던 일들을 같이 흘려보내고 새로운 소망을 빌 것이다. 더러는 두꺼운 바나나대만 사용하여 특이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선생님들도 하나씩 꽃배를 만들어 책상 위에 모아 두었다. 벽도 없는 1층 강당, 날이 이슥해져 오자 아이들은 하나둘 꽃배에 촛불을 밝힌다.
강도 없는 산골학교, 어디에다 배를 띄우나 궁금했는데, 조그만 마을길을 지나 근처 계곡으로 간다. 이방인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그만 미끄러져 옷을 버리고 손바닥에도 상처가 났다. 조그만 물이 급하게 흐르는 여울, 아이들의 배가 급류에 걸려 금방 난파되고 만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깔깔거리며 즐거워한다. 선생님들이 조금만 신경 써 돌이라도 막아 두었으면 배가 훨씬 오래 떠 있었을 텐데, 금방 쓰러지는 아이들의 배에 아쉬움이 남는다. 위쪽에 있는 작은 소에는 누군가 띄워 둔 배 세 척이 뱅뱅 돌며 오랫동안 떠있다.
◆강남스타일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와 그들만의 잔치를 연다. 부모들도 따라와 뒤에 서서 구경을 한다. 한 아이씩 무대로 올라올 때마다 박수 소리가 요란하고 아이들은 그동안 연습한 장기를 선보인다. 선생님들이 준비한 선물은 과자이며, 아이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해 솜씨 자랑을 한다. 갑자기 귀에 익은 음악 소리가 들린다. 싸이의 역동적인 몸짓에 맞춰 아이들이 활기차게 춤을 춘다. 오랜 여행 기간 나는 저 노래를 몇 번이나 들었나.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며 금방 낯선 이국인들과 훨씬 가까워짐을 느낀다. 이어 배꼽춤을 추는 9살 소녀가 순식간에 좌중을 압도하며 웃음바다를 만든다. 마지막에는 잘한 아이들만 나와 다시 춤을 추고 박수로 순위를 결정하는데, 배꼽춤을 추던 아이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다. 이어 선생님과 아이들이 전부 운동장으로 나가더니 저마다 홈로이를 부풀리고 촛불에 붙인다. 일시에 운동장이 소란해지며 수많은 등불이 켜지면서 하나둘 하늘로 오르기 시작한다. 일시에 온 하늘 가득 불꽃들이 피었다.
너의 소망이 무엇이니/ 내가 묻자/ 소녀는 하얀 잇속을 드러내며/ 빙긋이 웃기만 한다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나도 문득 할 말이 없어/ 하늘만 올려다본다
불꽃으로 아스라하게/ 사라지는 등불
오늘 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별 하나/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풍등(風燈), 윤재훈
아이들의 행사가 어느 정도 끝나가자 인근 몽족, 깔리양 마을 선생님들과 오바또 직원들이 모여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가라오케를 즐기며 술을 마신다.
◆한국인 목사가 사는 산속 마을
태국에서 가장 크게 열린다고 하는 '로이 끄라통' 행사를 보기 위해 산속 오지 마을을 떠나 치앙마이로 향한다. 산속 가운데 있다는 비교적 큰 마을 '매쳄'. 그곳에는 한국인 목사가 10년째 목회를 하며 한글도 가르친다고 한다. 산속으로 가는 비포장길은 험했으며, 굽이굽이 골짜기마다 깔리양족들이 사는 몇 개의 마을을 지난다. 모두 들판으로 나간 마을길은 한산하다. 비에 젖은 짧은 오르막길을 만나자 내가 탄 차가 갈지(之)자를 그리며 미끄러진다. 잠깐 그냥 돌아갈까도 생각해 본다. 산골생활에 이골이 난 마을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도 씽씽, 잘도 올라가는데, 몇 번을 시도하다 간신히 감탕길을 오른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한쪽은 급경사다. 만일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날 듯한데, 이곳 사람들은 우기에는 이쪽으로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차들이 지나가면서 어지럽게 남겨둔 홈을 따라 양배추가 떨어져 있다. 어젯밤에 야음을 틈타 팔러 나가던 차에서 떨어진 것들인데, 그것을 하나둘 주우며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뒷좌석에 벌써 소복하게 쌓였다.
이따금 돌아오는 미니 트럭들, 그들은 인근 도시 치앙마이에서 양배추를 팔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그 옛날 고향마을 신작로처럼 뽀얀 흙먼지를 내며 다가왔다 멀어진다.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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