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영국의 로열 앨버트홀 에서는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 시향이 무대에 섰다.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인 BBC 프롬스의 초청이었다. 국내 오케스트라로는 처음 참가하는 것으로 프롬스의 역사가 120년이나 된 것을 생각할 때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서울시향의 연주 프로그램을 살피던 중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교향곡, '비창'. 초연 이후, 9일 만에 그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사후적으로 슬픔이 한 꺼풀 덧씌워진 곡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은 그래서 이 곡을 그의 레퀴엠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진혼이라 부르기에는 이 곡의 진폭이 너무나 크다. 죽음이라는 큰 사건조차 이 곡 앞에서는 삼켜지는 듯하다. '비창'은 거칠게 말하면 슬픔과 비통함에 대한 곡이지만, 이런 추상적 단어들 역시 곡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 곡은 우리에게 하나의 감정이나 사건을 뚜렷이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슬픔', '비통함'과 같은 단어로 일컫는 감정이 얼마나 많은 층위를 가질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한다. 그 어떤 진정한 기쁨도, 환희도 없으나 곡을 듣는 내내 마음이 요동친다. 감정은 이성을 앞서고, 감정에 앞서 선율이 흐른다. 예측 불가능한 짙은 감정의 체험.
머릿속의 모든 기억을 날려 버릴 듯 가볍고도 애절한 선율로 시작되는 1악장. 그리고 갑자기 폭발하는 총주. 총성과도 같은 그 음은 날카롭고 순간적이지만 그에 놀랄 새도 없이, 노도와 같이 음의 홍수가 밀려온다. 2악장은 고요하고 장엄하며 차가운 러시아의 어느 풍경을 상상케 한다. 우아하고 밝은 음이 마음을 가득 채우는 듯 하지만 그 음들은 기만적으로, 결국엔 환희를 비껴 음울하게 흘러간다. 3악장에서는 모든 악기가 어우러지며 매우 빠르고 힘찬 연주가 이어진다. 설명할 수 없는, 희로애락이 결정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무형의 에너지가 있다면 이와 같을 것이다. 이어지는 4악장은 그 힘을 모두 거두어 끝없이 어느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때 아마도 우리가 이르는 곳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품고 산다. 그리고 각자의 삶은 일순간 들려오는 음악에 각기 다른 삶을 얹는다. 나에겐 4악장이 줄곧 등장하던 영화 를 볼 때의 감정이 늘 되살아난다. 4악장을 들을 때마다, 비극적 사랑의 덧없음을 끝없이 생각한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결국 내 삶을 떠나 한순간 나를 다른 곳에 위치시키는 체험이다. 문득 다가오는 감정, 생각들을 통한 여행. 그것이 알 수 없는 모호함이라면 더 좋겠다. 헤맬수록 우리는 더 멀리, 더 깊이 탈주할 것이기에. '비창'을 자신이 쓴 최고의 곡이라 칭했던 차이코프스키. 그는 이 곡을 쓰고, 또 연주하며 어느 곳에 이르렀을까.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비창'이 부디 각별한 여행이 되길 바란다.
신동애 (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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