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금호강 르네상스 시대를 다시 꿈꾸며

입력 2014-08-27 08:00:00

"금호강 맑은 물에 조각배 띄우고/ 한가히 오가며 백구(白鷗)와 노닐다가/ 달 아래 흠뻑 취해 뱃길을 돌리니/ 오호(五湖)가 어디더냐 이 풍류만 못하리."

조선 전기의 대문장가인 서거정은 고향 대구의 정겹고 아름다운 풍광 10곳을 한시 '대구십경'(大邱十景)으로 읊었는데, 이 시는 그 중 첫 번째이자 으뜸인 '금호강에 배를 띄우고'이다.

이 시의 배경이 바로 현재의 금호강 유역 가운데 검단'무태 지역이다. 북구 검단들 지역은 대구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이라고 불리지만 아직 미개발지역이다. 둑 건너 금호강 수변은 금호강변 자전거 길을 이용하고 산책하는 일부 시민들이나, 둔치(약 7만2천평)에 조성된 많은 축구장과 야구장들을 이용하는 생활체육 동호인들에게만 사랑받고 있다. 신천 동로를 따라 검단공단 방향으로 쭉 나가면 나오는데, 펼쳐진 한 폭의 동양화에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부 계획대로라면 2019년쯤 신천 동로가 금호강을 따라 검단들 지역으로 이어지고 강 건너 동구 이시아폴리스 지역까지 다리로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중동교에서 차로 고작 15분 걸린다. 대구시민이라면 누구나 짧은 시간에 이곳에 닿을 수 있다. 지금까지 대구시민들이 도심에서 쉴만한 곳은 팔공산과 비슬산, 앞산공원, 신천강변과 금호강 동촌유원지가 고작이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주로 시외로 나가서 비용과 시간을 뺏기며 레저와 관광을 즐겨야 했다. 따라서 자연 풍광이나 도심 접근성, 레저 관광 등 모든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금호강 유역 검단'무태 지역의 개발 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다.

대구는 전통적으로 나루터의 고장이어서 금호강, 낙동강변에서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금호강변의 수많은 정자는 조선 중기 유학의 대구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대구의 선비들은 금호강을 따라 세심정(洗心亭, 동변동 선수촌 아파트 입구)과 압로정(狎鷺亭, 검단들 앞)에 이르는 뱃놀이를 즐겼다. 지척에 있는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지금 건설 중인 연경주택단지)에서는 조선 중기 강안문학(江岸文學)을 꽃피웠다.

강 건너 북쪽에는 고려 왕건과 견훤이 건곤일척의 전투(동화천 살내전투)를 벌였던 곳이 있고, '무태' '안심' '반야월' 등 지금도 많은 지명은 그때 유래되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우락재 최동보는 이 유역에서 왜군을 대파했다. 검단'무태 지역 금호강변은 이처럼 무궁무진한 역사와 문학 이야기까지 어우러진 '스토리' 중심의 휴식과 관광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필자는 금호강변 검단들 앞 둔치를 서울 한강처럼 캠핑장과 수영장, 잔디공원과 운동장, 야외 콘서트장 등을 두루 갖춘 대구를 대표하는 수변공원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나아가 레저촌과 등산로를 조성하고, 구름다리와 나루터를 세우고, 각종 수상놀이 기구와 시설도 설치해서 전국적인 수변레저관광 테마파크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비행기 소음으로 용도가 제한적인 검단들까지도 이와 연계하여 개발하면 부가가치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의 모델이 아닐까 싶다.

대구시는 수십 년간 기업 위주의 정책에 매달려 왔다. 당연히 시민들의 휴식과 레저, 관광 등 미래 지향적 사업은 뒤로 밀렸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팍팍한 삶을 잠시나마 치유할 수 있는 청량제 역할을 하는 휴식 공간, 다른 지역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대구를 찾게 만들 수 있는 매력적인 명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금호강 유역은 대구가 자랑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자산이자 대구의 미래이다.

'금호강 르네상스 시대'가 다시 활짝 꽃피우기를 꿈꾸며, 250만 대구시민이 환호하는 '대구시민 행복 대박'을 기다린다.

이헌태/대구 북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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