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공감 넘치는 세상을 꿈꾸며

입력 2014-08-25 08:00:00

얼마 전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을 다녀갔다.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환호하며 그를 환영했다. 힘들고 어렵고 낮은 사람들과 함께 눈높이를 맞추며 공감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단지 그가 높은 곳에 앉아서 머리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말로만 가르쳤다면 이런 전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선량한 마음의 바탕에는 '심퍼씨'(sympathy)와 '엠퍼씨'(empathy)가 있다. 비슷한 것 같지만 'Sympathy'는 '동정' '연민'으로, 'empathy'는 '공감'이라고 번역하면 뜻이 완전히 다르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남의 아픔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empathy'야말로 머리로만 이해하는 동정심이나 연민을 느끼는 'sympathy'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고 귀하다.

의과대 재학 시절 들었던 교수님의 강의가 기억난다. 의사는 환자의 상황에 대해 충분히 동정하고 이해는 하되 환자에 대한 연민으로 이성을 잃고 환자와 같은 감정에 흔들려선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성경에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어떤 사람이 내 이웃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는 비유로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을 지경으로 내버려진 상태로 있을 때, 당시 신앙심이 깊은 두 사람의 지도층, 제사장과 레위인이 모른 체하며 제 갈 길을 갔다. 바로 그때 평소 멸시당하던 하층민에 속한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강도당한 사람에게 다가와 상처를 싸매주고 근처 주막 주인에게 데려가 그 사람을 돌봐주라면서 돈까지 주었다. 예수는 "이런 사람이 너의 이웃이다"라고 대답한다. 사마리아인의 행동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바로 공감이었다.

며칠 전 70세가 넘은 할머니가 진료실로 오셨다. 요통과 무릎 통증으로 오셨는데 자세한 병력을 묻기도 전에 당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하고 자신이 힘들게 살아오면서 자녀들을 잘 양육시켰는데, 이제 살 만하니 몸에 병이 왔다며 속상하신지 한참 동안 긴 한숨을 내쉬셨다. 할머니의 간절한 이야기가 안됐고 마음이 아파 열심히 경청했더니 할머니께서 더 신이 나셔서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충까지 말씀하셨다.

마음으로 공감하며 할머니를 위로하고 주사치료를 했더니 할머니의 만족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통증으로 인한 우울증도 좋아지고 식욕도 많이 회복됐다.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의사가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더 자주 진료실을 찾아오고 치료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처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공감능력이라고 한다. 적폐청산이라는 큰 국가적 과제를 풀기 위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이상곤 대구파티마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통증크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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