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람들 사랑 얘기, 고향의 아름다움 속에서 풀어내보고 싶었어요"
지난달 20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비전익스프레스' 부문에 서울사람들에게는 다소 생경스러운 제목의 영화 한 편이 소개됐다. 영화 제목은 '왓니껴'. '왔습니까'의 안동 사투리가 제목이다.
18일 안동 중앙시네마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주연배우 심혜진, 전노민이 참석해 '관객과의 대화' 이벤트가 있었고 이날 좌석은 전석 매진됐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 펼쳐진 안동의 아름다운 풍경과 담백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에 감탄했다.
안동의 곳곳을 아름답게 담아낸 이 영화의 감독 이동삼(54) 씨는 안동이 고향이다. 촬영감독으로 30년 넘게 충무로에서 활약해 온 이 감독은 '왓니껴'로 첫 연출 데뷔를 했다. "아마 충무로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신인감독이 나일 것"이라는 이 감독을 만났다.
◆"안동에서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영화의 배경으로 하고많은 도시 중 '안동'을 고른 이유를 물었다. "안동이 배경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어요. 거창한 이유는 없어요. 일단 안동이 내 고향이니까 고향을 배경으로 영화를 한 편 찍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안동 출신의 영화인들이 의기투합을 하게 됐고 기획에 들어갔습니다. 경상북도와 안동시에도 기획서를 들고 투자 요청을 했더니 흔쾌히 받아 주셨구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이 감독은 안동시와 시민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엑스트라를 동원해야 할 때 시민들은 기꺼이 일손을 거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이때 고향의 따뜻한 인심을 많이 느꼈다.
"내용 중에 상여를 드는 신이 있어요. 많은 엑스트라가 필요한데 면장님들이 이때 도움을 주시더군요. '영화 촬영에 사람이 필요하니 도와달라'고 여기저기로 문자를 보내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200명 가까운 분들이 달려오시더라고요. 중장비를 빌려야 했을 때도 거의 공짜로 해주셨어요. 정말 내 고향이 아니라면 받기 힘들었을 도움들입니다. 정말 다시 한 번 촬영에 도움을 주신 안동시와 시민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축구선수를 꿈꾸다 영화판으로
이동삼 감독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까지 축구선수를 했었다. 그러다 대학교에 진학한 뒤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선수의 길을 접어야만 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때 이 감독에게 손을 내민 곳은 다름 아닌 영화판이었다.
"부상으로 축구를 못하게 되니 '앞으로 뭐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했죠. 그때 제가 알고 있던 형님 한 분이 '영화판에 일손이 부족하니 좀 거들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가서 일을 도왔는데 이곳이 재미있는 곳이더라구요. 그래서 계속 일을 하게 됐는데 전 촬영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 계속 촬영분야에서 일을 해 왔지요."
이 감독은 1991년 영화 '자전거를 타고 온 연인'에서 촬영감독을 맡으면서 '감독' 타이틀을 받게 된다. 이후 '나에게 오라(1996)' '악어(1996)' '올가미(1997)' '파랑주의보(2005)' '해운대(2009)' 등에서 촬영감독과 수중촬영 감독을 맡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나에게 오라' '악어' '올가미'에요. '나에게 오라'는 횃불 놀이 신이 있는데 그 장면을 찍을 때 거친 느낌을 내야 해서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고요, '악어' 덕분에 우리나라 영화에 수중촬영이 대중화됐지요. 그런 부분에 제가 기여한 게 있어 기억에 남습니다. '올가미'는 제게 황금촬영상 금상을 안겨 준 고마운 작품이라서 더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저예산 영화의 무기, 시나리오
영화 '왓니껴'는 소위 말하는 '저예산 영화'다. 그래서 이 감독이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 '적은 제작비로 어떻게 좋은 영화를 찍어낼 것인가?'였다. 예산의 절반 이상을 경상북도와 안동시로부터 지원받았지만 제작을 이끌어 나가기 쉽지 않았다. 가장 걸리는 부분이 바로 배우와 촬영 스태프들의 개런티 문제였다. 이 감독은 이 어려움을 탄탄한 시나리오가 주는 매력과 30년 넘게 충무로에서 쌓아올린 인맥을 이용해 헤쳐나갔다.
"우리 영화에 들어간 총 제작비로는 심혜진 씨나 전노민 씨 같은 배우들에게 겨우 차비나 될까 할 정도의 개런티밖에 줄 수 없었어요. 하지만 두 배우 모두 시나리오가 마음에 든다며 출연을 결정했어요. 명계남 씨 같은 배우도 순전히 저와의 친분으로 특별출연을 결정해 주신 거고요.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영화 찍기가 훨씬 어려웠을 겁니다."
캐스팅 부분도 이 감독이 많이 고민한 부분이었다. 안동이 배경이다 보니 사투리를 잘 쓰는 배우가 필요했다. 특히 종손으로 안동에 계속 남아있는 주인공 친구인 '택규'의 역할을 해야 하는 배우는 특히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해야 했다. 수소문 끝에 찾은 배우가 바로 권재원 씨다. 권 씨는 안동 출신의 연극배우였기에 안동 사투리를 정확히 잘 전달할 수 있는, 이 감독에게는 최고의 배우였다.
◆마약처럼 끌어당기는 '영화'
이 감독에게 혹시 영화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영화라는 게 말이죠, 마치 마약과 같더군요. 너무 힘들게 찍어서 '다신 카메라를 못 잡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도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박혀 올라가는 걸 보면 묘한 희열이 있어요. 몸이 안 좋거나 촬영 일정상 며칠 쉬게 되는 날이 있으면 현장이 또 자꾸 생각나요. 정말이지 마약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제 이름이 왠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제 이름이 안동간고등어 간잽이 선생님 성함과 똑같습니다. 간잽이 이동삼 외에도 영화감독 이동삼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 영화 '왓니껴'로 많이 알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 감독은 아직도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촬영이든 제작이든 연출이든 또다시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오면 잘해낼 준비가 돼 있다. 지금은 중국과의 합작을 통한 영화제작도 추진 중이다. '왓니껴' 이후 이 감독의 행보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해볼 만한 감독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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