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손글씨다'…캘리그라피에서 느껴보는 손글씨의 매력

입력 2014-08-23 08:17:13

대구캘리그라피 커뮤니케이션 쓰임새
대구캘리그라피 커뮤니케이션 쓰임새'김형균 실장이 쓴 '대구 경북 1등 사랑 매일신문' 캘리그라피 작품. 김형균 실장 제공
캘리그라피 수업 풍경. 김형균 실장 제공
캘리그라피 수업 풍경. 김형균 실장 제공
임욱기 씨가 만든 카카오톡 캘리그라피 이모디콘. 임욱기 씨 제공
임욱기 씨가 만든 카카오톡 캘리그라피 이모디콘. 임욱기 씨 제공
먹튀 캘리 권영교 대표가 캘리그라피 작업 때 쓰는 도구들. 다양한 붓, 펜, 펜촉 사이에 나뭇가지도 있다. 이화섭 기자
먹튀 캘리 권영교 대표가 캘리그라피 작업 때 쓰는 도구들. 다양한 붓, 펜, 펜촉 사이에 나뭇가지도 있다. 이화섭 기자

MBC FM4U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타블로의 꿈꾸는 라디오'의 마지막에는 DJ인 타블로가 짤막한 한 줄의 글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블로노트'라는 코너가 있다. 블로노트 코너가 끝나고 나면 청취자들이 그 내용을 손 글씨로 적은 뒤 사진으로 찍어 이메일로 보내면 그중 하나를 선정해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올린다. 청취자들은 "뭔가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느낌으로 블로노트를 캘리그라피로 만들어 보낸다"고 말한다. '라디오'라는 아날로그적인 매체에 손 글씨가 만나 만들어낸 인상적인 모습이다.

이미 회사의 문서 작성, 학생들의 리포트나 숙제는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켜고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쓰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기자들은 취재수첩에 메모하기보다는 바로 스마트폰의 메모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자판을 두드리거나 심지어는 녹음 기능을 켜서 들이대기도 한다. 민원서류도 굳이 양식을 적어서 내는 것보다는 인터넷으로 뚝딱 신청하다 보니 손으로 뭘 적어내는 게 귀찮을 정도다. 정말이지 21세기가 되면 더 이상 손으로 글을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컴퓨터 글꼴로만 된 간판을 보다 마치 손으로 휘갈긴 듯한 글씨로 이뤄진 한 카페의 간판을 본 순간 발걸음은 그 카페로 향한다. 어느 날 우연히 본 영화포스터의 글씨는 컴퓨터에 없는 글꼴 같은데 어떤 글꼴이길래 손으로 쓴 듯한 감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듯반듯한 고딕체, 명조체만 보다가 손으로 휘갈긴 듯한 글씨를 보는 순간 흰 종이에 먹물 한 방울이 떨어지듯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다.

세상이 디지털 문명으로 변해가는데 아직도 손 글씨의 따뜻함에 끌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신기한 일이다. 이번 주는 다시 주목받는 손 글씨에 대한 매력을 살펴봤다.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캘리그라퍼들을 통해 손 글씨가 주는 매력을 들어봤다. 세대별로 손 글씨를 누가 제일 못쓰는지도 한 번 살펴봤다. 손 글씨를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도구인 필기구들은 요즘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알아봤다. 아울러 매일신문 기자들이 취재할 때 쓰는 필기구도 살짝 엿보았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요즘 간판이나 상품 포장지 등에 손으로 쓴 듯한 글씨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글씨체들은 컴퓨터의 반듯한 글꼴이 주는 단정하지만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을 벗어나 다양한 감성을 전달한다. 이런 글씨체는 대부분 '캘리그라퍼'들이 직접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손으로 직접 쓴 글씨들이다.

◆따뜻함과 새로움이 있는 글씨

손으로 직접 쓴 글씨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캘리그라피이다. 캘리그라피가 사용된 곳은 매우 많다. 전시'영화 포스터, 책 표지에는 캘리그라피가 단골로 등장한다. TV 프로그램 타이틀 화면에 들어가는 서체나 지방자치단체의 표어, 각종 상품의 포장지에도 캘리그라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이모티콘에도 캘리그라피가 등장했다. 캘리그라퍼 임욱기 씨는 지난해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을 캘리그라피를 이용해 제작했다. 임 씨는 "컴퓨터 글꼴보다 손으로 쓴 글씨가 주는 따뜻한 감성을 느끼려는 사람과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캘리그라피로 만든 이모티콘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디지털 글꼴에서 느낄 수 없는 손 글씨의 따뜻함을 느낀 사람들이 캘리그라피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캘리그라피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손 글씨가 주는 자유분방함과 새로움 때문이기도 하다. 컴퓨터 글꼴이 주는 획일적인 모습보다는 글씨의 크기와 획의 굵기가 자유자재로 바뀌는 캘리그라피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그것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대구캘리그라피 커뮤니케이션 쓰임새'김형균 실장은 "모든 것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컴퓨터 글꼴과는 달리 손 글씨는 남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캘리그라피가 인기를 끄는 비결"이라며 "쓰는 행위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 왔던 것이기 때문에 '쓴다'라는 행위와 과정, 그 결과물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캘리그라피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캘리그라피를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캘리그라피의 매력 중 하나다. 먹튀 캘리 권영교 대표는 "서양의 경우 알파벳 캘리그라피의 연구가 축적된 것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이라며 "글씨를 쓰다 보면 캘리그라피가 한글 모양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굉장히 유용하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많은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다

김형균 실장과 권영교 대표가 보여준 캘리그라피 작업 도구들은 너무도 다양했다. 붓, 붓펜, 볼펜, 유성펜, 유성매직, 보드마카 등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필기구도 있지만 나무젓가락, 칡뿌리, 나뭇가지 등 먹이나 잉크를 찍어 글을 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도구로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 글씨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잘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도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퍼들이 말하는 좋은 글씨는 "한 번만 보고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는 글씨"라고 말한다. 김형균 실장은 "만약 '꽃'이라는 글자를 캘리그라피로 쓴다고 하면 그 글자를 봤을 때 꽃의 느낌이 느껴지도록 쓰는 것이 중요하다"며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글에 숨어 있는 내용이나 감정이 글씨를 보는 사람에게 전달돼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캘리그라피 입문자용 강좌는 2~3개월 단위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다. 캘리그라퍼들은 하나같이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연구, 연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권영교 대표는 "캘리그라피는 계속해서 써 보지 않으면 절대 늘지 않는다"며 "한자 서예나 조선시대 백성들이 쓰던 민체 등을 보면서 계속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캘리그라퍼들은 지금의 작품들 중 함량 미달의 작품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김형균 실장은 "우연히 보는 몇몇 캘리그라피 작품들을 보면 '잘 못 쓴 글씨인데 왜 저기 걸려있지?'하는 게 꽤 많이 보인다"며 "캘리그라피가 인기를 끌면서 '돈이 된다'는 생각에 아직 실력이 설익은 작가들의 작품이라도 받아서 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영교 대표는 "손 글씨가 광고에 쓰이면서 사람들이 '한글의 또 다른 멋을 봤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캘리그라피는 아마 계속 인기를 끌 것 같다.

◇글씨의 예술, 캘리그라피

'캘리그라피'(Calligraphy)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서예'(書藝)를 영어로 번역할 때의 단어로 선택됐지만 캘리그라피의 세계는 서예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서예는 이미 정해진 서체에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는 예술이라면 캘리그라피는 서체에 얽매이기보다는 글씨의 모양을 목적과 의도에 맞게 다양하게 변형시켜 글이 주는 의미와 감성 전달을 시도하는 예술 장르라 할 수 있다. '대구캘리그라피 커뮤니케이션 쓰임새'의 김형균 실장은 "전통서체를 계승하고 글쓰기로 인격도야를 시도하는 서예와 달리 캘리그라피는 글씨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캘리그라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2000년대 중반이며 대구에는 3, 4년 전부터 캘리그라피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도입 초기에는 디자인이나 광고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업무에 사용하기 위해 주로 배웠지만 지금은 일반인들도 취미 삼아 많이 배운다. 먹튀 캘리의 캘리그라퍼 권영교 씨는 "캘리그라피는 서체의 영향 없이 글씨를 이용하고자 하는 목적이나 자신의 감정에 맞는 방식으로 쓰는 법을 배우다 보니 글씨의 구현이 자유로운 면이 많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구에도 대구경북디자인센터나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캘리그라피 강좌가 속속 열리고 있는데 인기가 매우 좋다. 김형균 실장은 "대구경북디자인센터에서 강좌를 열면 20명 정원에 50명 넘는 인원이 신청한다"며 "대구뿐만 아니라 포항, 구미, 경주 등 경북 인근 지역으로도 캘리그라피 강좌가 확산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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