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괴연저수지 붕괴…순식간에 덮친 흙탕물, 마을·농경지 삼켰다

입력 2014-08-22 11:02:37

포도나무 수확 앞두고 침수, 고사하면 내년 농사도 망쳐

21일 오전 영천시 괴연동 괴연저수지 제방 붕괴 사고로 저수지 안에 있던 6만여 t의 물이 쏟아지면서 주택 수십 채가 침수 피해를 입은 가운데 주민들이 집안에 들어찬 물을 퍼내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21일 오전 영천시 괴연동 괴연저수지 제방 붕괴 사고로 저수지 안에 있던 6만여 t의 물이 쏟아지면서 주택 수십 채가 침수 피해를 입은 가운데 주민들이 집안에 들어찬 물을 퍼내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저수지 둑 붕괴사고가 일어난 영천시 괴연동 일대는 아수라장이었다. 폭포처럼 쏟아진 물은 주변 포도밭과 참깨밭, 논 등 농경지를 휩쓸었고, 600m가량 떨어진 마을까지 밀려들어 왔다. 거센 물살에 아스팔트 도로가 유실됐고, 하류인 봉동천 둑 일부가 무너져 가드레일 밑동이 위태롭게 드러났다. 주민들은 괴연저수지 둑 붕괴 사고가 주민들의 보수 요청을 외면한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시름에 잠긴 괴연동 주민들

최초 신고자인 주민 임태화(55) 씨는 "포도 작업을 위해 집을 나서는데 저 멀리 밭 위에서 파도처럼 물이 넘쳐 들어왔다"고 말했다. 임 씨는 119에 신고한 뒤 통장에게 저수지가 무너졌다고 알렸다.

둑 붕괴로 흙탕물이 쏟아지자 괴연동, 채신동, 본촌동 주민들은 황급히 대피했다. 괴연동에서 가게와 오소리농장을 운영하는 유대옥(56) 씨는 "농장에서 작업을 하던 중 물이 갑자기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밀려들어 허벅지까지 차올라 빈손으로 동네 뒷산으로 피했다"면서 "가게에는 물이 1.5m 높이까지 차올라 물품과 냉장고, 밥솥, TV 등 가전품이 침수됐다. 대피 중 비상금을 챙기기 위해 다시 가게로 가려 했지만 이미 물이 목까지 차오른 상태였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민 박성도(88) 씨는 "물이 마당까지 차올라 무서웠다. 대피고 뭐고 도망갈 수도 없이 집안에 숨어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날 붕괴된 괴연저수지 둑은 물넘이 수로 17m와 흙 제방 30m 등 47m에 이른다. 둑 붕괴로 못 밑의 괴연동'채신동 포도밭, 들깨밭, 벼논 등도 침수되거나 유실됐다. 괴연동 마을 안길 30여m의 아스팔트도 물살에 휩쓸려 사라졌다.

주민들은 물살이 잦아든 오후부터 복구 작업에 나섰지만 황망한 피해에 낙담한 표정이었다. 농민 박옥분(79) 씨의 포도밭은 8천여㎡가 물에 잠기고 일부는 유실됐다. 박 씨는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 이제 막 수확을 시작했지만 포도알이 터져 내다 팔기도 어렵게 됐다"면서 "물에 잠긴 포도나무가 죽을 경우 내년 농사도 망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날 오후 영천여성유권자연맹과 한마음회, 미심회, 여성의용소방대 등 봉사단체 회원들은 마을을 찾아 흙탕물에 빠진 그릇을 씻는 등 복구 작업을 도왔다. 영천소방서는 오염된 물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 물을 뿌리며 진흙을 제거했다.

영천시는 예비비 7억원을 긴급 편성해 괴연저수지 복구 및 재난지원금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보수 요구했지만 묵살당해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물이 새기 시작한 저수지의 보수를 요구했지만 묵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괴연동 주민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물이 새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괴연저수지는 10년 전 제방 폭이 좁고 길어 위험하다는 주민들의 요구로 물넘이 수로 확장 공사를 한 바 있다.

주민들은 "지난해 경주 산대저수지 붕괴 후 3차례나 괴연저수지 누수에 대한 보수공사를 요구했으나 영천시가 예산 부족을 핑계로 계속 공사를 미뤘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지난 5월에도 영천시청을 찾아가 보수를 요구하기도 했다. 임태화 씨는 "못 밑에서 누수된 물을 퍼내면 퍼낸 만큼 계속 고여 못이 터질 것을 예상하고 보수공사를 요구했다. 지난해 산대저수지 붕괴 이후 안전점검도 실시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영천시는 육안으로 검사한 뒤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보수를 미뤘다. 1945년 축조된 괴연저수지는 내구연한(60년)을 10년 가까이 넘겼지만 안전도 B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이에 대해 영천시는 "저수지의 붕괴는 누수와 관계없다"는 입장이다. 누수 부분은 저수지의 물넘이 수로 밑부분으로 이 부분은 유실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 영천시 관계자는 "최근 5일간 290㎜의 비가 쏟아진데다 21일 새벽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저수지 물이 물넘이 수로와 옆의 제방으로 파고들며 붕괴됐다"면서 "저수지 보수는 올해 추경 예산을 편성해 9월쯤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영천 민병곤 기자 min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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