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아 그것 아냐?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빛나는 거야."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한물간 가수 최곤에게 매니저인 민수가 하는 말이다. 영화의 배경은 강원도의 작은 도시 영월이다. 한때 잘나가던 록가수 최곤은 빠듯한 주머니 사정으로 내키지 않은 지역방송의 DJ를 맡는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첫 곡으로 골라 나름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라디오 볼륨을 끄거나 낮추며 등을 돌린다.
그러다 방송과 주민의 눈맞춤이 일어난다. 방송 중에 커피배달 왔다 느닷없이 게스트로 마이크를 잡은 김 양의 엄마 찾는 이야기가 주민들의 심금을 울린다. 백수 청년, 환자가 없다는 병원 간호사, 심지어 고스톱 치다 룰을 다투는 할머니도 전파를 탄다. 영월의 록밴드와 세탁소 김 사장, 철물점 박 사장….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이웃의 이야기에 주민들은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다시 높인다.
'라디오 스타'의 닮은꼴 라디오는 대구에도 있다. 아홉 해 전 후텁지근한 이맘때쯤 첫 전파를 쏘았다. 그녀는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개국 얼마 뒤 논문을 쓸 요량으로 인터뷰를 했을 때도 그랬다. 영화감독의 꿈은 접었지만 마이크에 앉아 소리의 매력을 맛본 방송의 감흥이 컸다. 그 라디오가 바로 성서공동체 FM이다.
그녀가 라디오를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다. 일찍이 노동자의 삶 속에 뛰어들어 함께 울고 웃던 그녀가 지쳐갈 즈음 문득 만난 게 라디오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공동체 라디오 시범사업은 그녀를 비켜가지 않았다. 방송을 하고 싶다는 무덤덤함이 기대로 바뀌고 현실이 되었을 때 그녀는 거기에 있었고 지금도 쭉 그 자리에 있다.
달랑 200만 원으로 방송을 하게 됐으니 자금이 필요했다. 후원의 밤을 열었고, 그녀는 '1억 호프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많은 후원금을 모았다. 그 관심은 공동체라는 이웃을 부활시키는 신호탄으로 이어졌다. 집안에 머물던 여성을 불러냈다. 소외된 사람들은 광장으로 나왔다. 동네 라디오의 주민난장이 만들어진 셈이다.
공동체 라디오는 작은 출력의 지역밀착형 방송이다. 주민들이 프로그램 제작과 운영에 참여한다. 공동체의 현안을 주민 스스로 설정하고 미디어를 통해 소통한다. 공동체 라디오는 애초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저항과 투쟁을 채찍질하는 매체로 걸음을 뗐다. 1940년대 후반 라틴아메리카의 농부와 탄광 노동자들이 국가의 미디어 독점에 맞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로 출발했다.
그래서일까.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의 정책적'제도적 지원이 아예 멈춰 섰다. 신규 사업자 선정이나 출력을 높이는 부분은 언감생심이다. 기존 방송국의 운영도 비틀거릴 정도로 아예 정책 자체가 없어졌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문화 독점에 따른 심각한 불평등을 지적했다. 공동체 라디오는 주민들 스스로 상징생산 도구인 미디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유효한 매개체다.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온 성서FM의 그녀. 노력으로 버텼다기보다 버텨서 강해졌다. 현재의 땀과 미래의 꿈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같이 간다. 내년 열 돌을 앞두고 희망 찾기가 한창이다. 스토리 북이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공동체 품 안에 공동체 라디오가 있다는 사실과 딱 맞아떨어진다.
'라디오 스타' 성서FM은 여전히 미래 진행형이다. 동네주민이 라디오 스타이기에 주인공이 없다고 투덜거릴 일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라디오 스타'에 허기지다. 그녀의 독백이 절로 나온다.
"성서FM아, 그것 아냐?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욕심 많은 별이 빛나는 거야."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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